시론

 지난 2월 19일 중국의 최고 지도자 등소평이 92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설계자로 개혁개방정책을 주도한 등소평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함에 따라 중국과 그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각국은 등소평 이후의 중국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등소평의 사망에 따른 중국의 변화추이에 각국이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는 데는 ‘미국에 맞서서 유일하게 노(NO)라고 말할수 있는 나라’, 21세기 초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대국(大國)으로의 중국에 대한 관심이 한몫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된 관심의 영역보다는 우리에게 주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적인 남─북관계와 동북아의 평화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먼저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강택민 중심의 후계체제에 대해 살펴보자. 여러 예측으로 이붕의 보수파와 교석의 개혁파, 그리고 강택민의 상해방(上海幇)이 한지붕 세가족의 형태로 합종연횡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우선적으로는 현집단지도체제의 유지속에 개혁개방을 중심으로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성장에 중점적인 노력이 기울여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한 근거로는 구 소련과 동구의 몰락을 통한 사회주의권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보여줬던 중국 정치제도세력들의 일치감이 등소평 사후의 혼란은 곧 위기로 판단하여 한배를 탄 동류의식이 강화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들 세 정치집단이 동일한 목표인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의지 속에는 보혁의 갈등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정치형태가 항구적일 수는 없지만 새로운 판짜기가 우리 사회처럼 단시일 내에 진행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강택민 국가주석 중심의 정치체계가 되었든 다른 어떠한 체계가 되었는 이전의 모택동이나 등소평과 같이 한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정치체제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등소평을 실질적인 중국의 ‘마지막 황제’로 보고 있다.
 이러한 휴계구도의 정립속에 가장 역점을 둘 사업은 92년 1월 등소평의 ‘남순강화’ 이후 더욱 빠르고 과감하게 진행되는 개혁개방정책의 확대를 통한 경제발전이다. 물론 이러한 개혁개방의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도시와 농촌의 갈등, 도시끼리의 지역갈등, 중앙의 구심력에 비해 확대되어지는 지방정부의 원심력 문제, 국가와 기업간의 갈등 등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또한 요구되어 진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위태한 줄위에서 중국 사회주의가 자산계급 자유화를 도모하는 우편향과 화평연변의 위험이 경제영역에 있다는 인식하에 개혁개방을 부정하는 좌편향을 얼만큼 극복할 수 있을 지 또한 많은 관심의 대상이다.
 다음으로 89년 천안문사건과 소련과 동구의 급격한 변혁과 가중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화평연변위협 등의 대내외적인 곤경을 타개하고 사회적 통합력을 얼마만큼 높혀 낼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 존재한다. 그동안 통합력을 발휘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개혁개방으로 많은 부분 그 영향력을 상실하였으며 티벳 자치구 문제, 홍콩 귀속문제, 대만과의 통일문제 등등 사회 통합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대내외 문제로 다루어야 될 성질이겠지만 홍콩과 대만과의 문제를 얼마큼 잘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사회적 안정을 조기에 이룰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지난 천안문 사건으로 실각되어 가택연금상태에 있는 조자양 전국가 주석의 복권과 천안문사건에 대한 재해석의 요구가 존재한다. 천안문사건은 현 정치지도 자들이 복잡한 양상으로 얽혀있는 사건으로 시위대를 유혈진압한 책임을 갖고 있는 이붕 총리나 천안문사건으로 실각한 조자양 주석의 뒤를 이어 보수, 개혁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인물로 등용된 강택민 현 국가주석 등등, 지난 천안문 사건은 중국체제의 불안정요소로 손꼽을 수 있다.
 이러한 내적문제와 함께 외부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면 홍콩의 귀속과 대만과의 통일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주권수호 및 영토보전과 관련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미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신국제질서 형성과정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정책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있어서 갈등관계로 지적되는 사항으로 미국의 시장개방압력과 중국내부 인권문제를 건드리는 것, 대만에 무기를 판 행위를 들 수 있는데 현실적인 관계의 일정한 진전은 양국간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각자의 이해관계에 대한 현실적 판단에서 비롯되는 잠정적인 것이며 사안의 성격에 따라 대립으로 치달을 소지도 여럿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대만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점의 양보도 못하겠다는 중국의 입장은 기타의 국가들과 치열하게 대립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 변화를 검토하겠다. 북한과 중국은 몇 년사이로 혁명1세대이며 양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잃었다. 그러면서 후계구도는 자연스럽게 혁명2세대 또는 3세대로 지칭되는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흔히 혈맹으로 지칭되는 혁명1세대간의 동지적 유대가 일정부분 손실되어 감을 나타내며 이후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실리적 입장이 대립될 수도 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도리로 형성된 동북아 관계에서 큰 이견이나 돌출되는 변수가 없는한 이전의 관계가 유지될 전망이다.

조 용 구
<경제. 92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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