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 수석졸업 장애인 고정심씨 만나

 그녀가 경영할 미술학원 문을 들어섰을 때 아직 정리가 덜 되어 다소 어지러워 보였다. 그녀가 기자에게 처음 건네는 말이 “죄송합니다”였다. 졸업이후 계속적인 인터뷰가 있었고, 오늘도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피곤함이 물씬 풍겨났다.
 “예술대 장애인 수석 졸업. 무척 값진 것이지요. 하지만 전 거의 노력도 필요했지만, 주변 사람 교수님, 선배, 후배 동기의 노력과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녀에게는 우리 충남 대학교에 입학한 것이 정규과정 교육으로선 처음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몸이 너무나 불편했고 약했기에 미술에 대한 꿈을 잠시 접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술에 대한 욕망은 그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정규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서, 무척 망설여졌어요. 하지만 경험이란 생각으로 국선에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비록 가작이었지만 당선을 했지요.”라며 “미술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선생님에게 사시를 받으려 했어요. 하지만 처음의 흔쾌한 대답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장애인이고 그리고 절 위해 헌신하는 어머님의 모습을 볼수 없다는 말로 차일피일 미루시더라구요. 결국 선생님은 간접적으로 절 사시하지 않겠다고 하셨죠. 제가 처음 사회에 느꼈던 좌절감이 오기로 변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정규과정을 밟고 대학에 들어오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기에, 국민학교 과정부터 검정고시로 독학하였다. 그녀가 검정 고시를 시작한 것은 바로 미술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망때문이었다. “가능한 속성으로 공부했어요. 그리고 하루에 두시간 이상은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세웠구요. 물론 힘들지만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늘 규칙적으로 생활하니 몸에 익숙해졌고,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볼수 있었다.
 “막상 대입시험에 합격을 하였는데도 소아마비 장애인을 받아 주겠다는 학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립대학은 장애인에 대한 입학이 덜 엄격하다는 것을 알고, 연고자는 없지만 서울과 제일 가까운 충남대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최우수 입학이라는 영광까지 거머지게 되었어요.” 대학을 다니면서도 어머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뒤따라 다녔다고 한다. “어머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수술을 받아야 함에도 제가 졸업하는 것을 본다고 졸업할때까지 꾹 참고 계셨어요. 공대같은 경우에는 계단의 폭이 넓잖아요. 그럴 때 어머니가 한계단 한계단 오르실때마다 ‘벌렁 벌렁’하는 심장소리가 들리는데, 고마움과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더라구요” 라는 말을 하며 그녀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 졌다.
 “막상 사회에 첫발을 딛고 나니, 그 동안 제가 잊어왔던 저의 역할이 생각나더라구요. 아내, 딸,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 모두가 저에게는 소중한 역할이죠.” 라고 말한다. 그녀의 앞으로의 바램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의 바램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에요. 입시미술 학원을 경영하면서 미술적 지식 뿐만이 아니라 참삶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싶어요. 더 나아가 교단에 서고 싶은 꿈도 있구요.”

유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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