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고소설의 통과의례적 실상 연구”

 대개의 고소설은 설화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전기적 일대기의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다. 영웅적 인물의 출생으로부터 시련과 극복의 과정을 거쳐 부귀공명을 누린다는 전기담을 바탕으로 서사가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서사전개가 시간의 계기를 좇아 시말(始末)을 서술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구성된다. 현대소설이 사건과 사건의 입체적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고소설은 이와 달리 평면적 배열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건이 시간적 계기에 따른 서사전개는 고소설이 인물 중심의 일화나 열전(列傳)내지 개인 전기물과의 관련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개인의 일생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술한 전기물의 서사양식을 고소설이 수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고소설은 개인의 삶을 다룬 실전류와는 다른 허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전과 같은 서사양식을 취하되 사건과 사건에 허구를 근간으로 한 흥미성이 가미되어야 한다. 이러한 흥미성은 독자들의 꿈과 이상을 반영하면서 시대정신과도 맞물려야 한다. 또한 당시 사회의 윤리적 도덕관념을 배경사상으로 삼으면서 선악에 대한 분별을 추구하여야 한다. 악인은 반드시 징계되고 선인은 시련을 극복하고 부귀공명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작자의 계몽적 의도성으로 내비칠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소설제작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하나의 특징이자 작자와 독자의 한 사회적 약속과도 같은 것이다.
 이처럼 흥미성과 이상지향을 바탕으로 한 고소설은 사건과 사건의 갈등 유발 내지 해소 등의 유기적 관계가 실전(實傳)과의 차별성을 지닌채 존재한다. 비록 실전류와 유사한 평면적 구성양식을 갖추고 있되 소설은 엄연히 실전과는 다른 독립된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소설 서사구조의 구성에 대한 이론은 다수 제기된 바 있다. 정주동교수를 비롯하여 김기동, 서대석, 김현룡교수 등 제현들에 의하여 나름의 정리가 이루어진 바다. 그런데, 기왕의 논의는 서사구조를 시간의 순차에 따라 나눌 것인지, 사건의 갈등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에 관심이 놓여 있다. 곧 작품의 사건구성을 3단 내지 5단구성으로 나누어 각 갈래에 하위 갈래를 설정해 서사단락을 포함시키는 방법이나, 하위 갈래인 십여개의 의미있는 서사단락을 중심으로 사건구성을 설정하는 방법이 주조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이들 구분의 잣대가 되는 요목을 살펴보면 양자가 대동소이함을 보게 된다.
 필자는 고소설의 구성이 통과의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점을 제안하려 한다. 전통의례를 포함한 통과의례가 고소설 사건구성의 원리가 된다고 하는 관점이다. 이는 고소설사건구성이 주인공의 일생담을 근간으로 짜여져 있다고 할 때, 주인공의 삶이 통과의례를 통하여 전개되고 이러한 현상을 읽을 수 있다. 작중 주인공의 ‘출생-사람-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예외없이 통과의례라고 하는 의례절차를 통하여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통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의례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그 중 상층민의 전통적 삶은 의례적 삶이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태어남과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성장해서 활동하고, 또 노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삶은 각종의례 속에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고소설 작중 주인공의 절대 다수는 양수층의 상층민을 모델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고소설 주인공들은 당대의 상층 신분의 소유자가 살아가는 삶을 모방하고 있다. 개인과 의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는 사회가 공인하는 모범적 관습과 의례를 온전하게 수용해야만 하는 전형적 삶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작자의 소설 제작 논리이기도 하겠고, 또한 독자의 소설에 대한 공식화된 요구일 수도 있다.
 요컨대, 이러한 소설 제작의 공식화된 의식은 소설구성의 전형적인 양식을 만들어내게 하였다. 이를테면, 주인공으로 하여금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몇몇 중요 의례를 통과하도록 하는 기본적인 장치를 소설에 공식화하였다. 주인공의 출생의례→자아추구로서의 성장의례→애정결합의 혼인의례→자아실현으로서의 성취의례→원향회귀로서의 성장의례라고 하는 일련의 통과의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소설 구성의 통과의례적 단계를 아래와 같은 분류할 수 있겠다.
 ①출생의례:가문배경, 무자갈등, 기자기도, 득자태몽, 신이해산
 ②성장의례:천품보유, 시련, 구원, 수행정진, 수행완수
 ③혼인의례:배필지정, 가약, 혼사장애 · 갈등, 재회결합
 ④성취의례:출전, 국난대결 · 평정, 영웅완성
 ⑤성장의례:지하매장, 천계승천 위에 제시한 구성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삶에 관심을 둔 부류 시안이다. 그리고 그의 삶이 추구하는 최종의 목표를 자아실현에 의한 영웅성취라고 하는 과제로 가정한 분류안이라 하겠다. 실제로 텍스트를 비롯한 주인공 중심의 고소설은 이러한 가정에 적절하게 부합함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위의 분류안은 고소설 주인공의 일생에 걸친 역정을 통과의례라고 하는 잣대로 계측해낸 구성논리라 할수 있다. 따라서, 고소설 주인공이 형성해낸 삶의 노장이 통과의례의 잣대로 검증될 수 있다면, 이러한 구성논리는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글은 박종익의 학위논문 “고소설의 통과의례적 실상 연구”의 3장 ‘고소설의 통과의례적 구성’에서 발췌한 것이다.

박 종 익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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