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문학동네 신인 작가상을 수상한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환타지 양식을 도입해 이 시대 가장 난무하면서도 또한 가장 진부해지기까지 한 죽음의 문제에 접근한다. 이 소설의 문제에 접근한다. 이 소설의 내용은 외형적으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곧, 지금껏 도외시되어 온 삶의 시대적 징후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자살 보조 업자 라는 지업을 가진 인물을 등장시키는 방식은 이야기 전체를 허구로 만들지만 리얼리스틱한 내용만을 고집해 진실에 이르겠다는 기존의 의식을 거부한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허구라는 또다른 소재를 통해 소설화시킴으로써 작가는 모든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모든 것을 긍정하고자 한다.
 우선 이 소설의 전체 내용 구조는 자살 보조 업자(혹은 자살안내자)의 일인칭 시점의 얘기를 작품의 처음과 맨 끝에 두고, 그 가운데에는 그와 관계한(혹은 자살을 보조해 준) 세 여자의 이야기와 함께 군데군데 여러 에피소드로 채워진다. 가운데 토막의 얘기들은 ‘작가-곧 신이 되는 길’이라는 명제에 따라 신과 같이 전지적인 시점을 쓰나 그것이 곧 무언가(문학은 곧 진실이라는 것?)를 찾아내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기 보다 무의미한 허공으로 소설을 던지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허공은 인간이라는 생물의 끝지점으로서의 죽음의 향연이 아니라 삶의 한 양태로서의 죽음, 그 내면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작품 속의 등장 인물들이 고통을 겪는 곳은 다름아닌 ‘지옥’이다. 내세에 주어진 징벌로서의 지옥이 아니다. ‘언제나 변함없고 언제나 무료한’ 현세, 삶의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속에서 죽음으로 가는 자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가장 냉혹한 방식으로 서술된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을 예술가와 지상덕목으로 삼는 작가는, 작품의 끝에 위치하는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라는 낭만주의적 그림을 작품 처음에 위치하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가진 고전적이고 절제된 시선으로 묘사하는 방법을 통해 죽음에 대한, 또는 소설에 대한 서술을 시도한다.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라고 단언하는 작가는 자신과 관계한 세 여자의 이야기를 압축하고, 그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너저분한 인생을 할일 없이 연장’하지 않고 ‘압축의 미학’을 통해 ‘삶의 비의’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끔 한다. 이는 결코 관조적인 입장의 무책임한 신으로서의 시선이 아니라 그녀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고 작가 자신도 선택하는 적극적인 시선이다. 그러나 이 적극은 앞에서도 말했듯 냉혹하다. 냉혹하게 죽음의 방식들을 서술하고 작가는 다시 허공속으로 돌아간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 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이라고, 죽음에 동요되지 않고 죽지 않은 자로서 ‘지옥’속에 복귀한다.
 겉으로 볼 때 소설 속의 화자와 세 여자는 삶의 표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실현을 위해 기능한다. 이들이 실현하는 죽음은 죽은 자의 세계가 가졌던 고통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위한 것도 아니다. 허구로써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그 두가지 이분법을 무화시킨다. 이미 죽은 자도 아직 죽지 않은 자도 동일한 ‘지옥’속에 있다. 무료한 삶을 글자로 기술하는 작가는 소설 속에서 죽음의 방식들을 냉혹하게 구분해내지만, 그로 인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난 독자들에게 ‘결국 무엇이 남는 것이냐’라는 공허만을 남겨줄지도 모르지만, 거부하지 않고 ‘너저분한 인생을 할일 없이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식과 인생의 치졸한 고통 속에 그녀들을 남겨두느니 그녀들 주체가 가진 비의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게 하는 것이 낫다는 의식 속에서 작가의 치열한 인생 읽기를 수행한다. 이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는 고통은 환타지 양식이라는 것으로 인해 이야기, 소설 만의 것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변하는 게 없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죽음과 죽음 아닌 것이 섞인 지옥 속으로 다시 간다. 다시 말해 삶을 순환 시키는, 죽음을 죽음 아닌 것으로 죽음 아닌 것을 죽음으로 되돌이키는 지옥 속의 움직임이다. 그럿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허구 속의 삶, 그 진실이다.
 
 박 승 희
(국문 · 3 금강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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