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여! 고이 잠드소서”

“그냥 이대로 묻을 수는 없다.”
 지난해 노수석 열사의 장례행렬을 막아선 연세대 학생들의 절규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는 열사가 나오지 않게 만드리라 다짐했건만, 노수석 열사의 뒤를 이어 수많은 열사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망월동 묘역에 잠든 노수석 열사의 잔디가 새로 돋아나기도 전에, 채 일년도 지나지 않아 류재을(조선대 · 행정96) 열사가 그 뒤를 이었다.
 지난 20일 조선대학교에서는 ‘김영삼 정권퇴진을 위한 민족조선 개강투쟁 선포식’의 학내집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남총련 개강투쟁 선포식을 위해 조선대에 들어오는 타대학 학생들을 배웅하던 과정중 정문에서 전경과의 치열한 대치가 있었다. 이때 투쟁의 선봉에 섰던 고 류재을군은(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전경이 던진 검은 물체(돌 혹은 직격탄)를 맡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 류재을 군이 사망한 이후 ‘류군이 무엇을 외치고 류군 사망의 정치사회적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것을 제쳐두고 경찰은 부검자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 하려하고 있다. 이것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의도일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부검을 두고 검찰과 “우리 재을이는 억울하게 죽었고 죽은 자신에게 또 칼을 댈 수는 없다”며 부검 거부 이유를 제시하는 류군의 아버지 류성렬씨 사이에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고 류재을 군의 사인이 무엇인가는 사실 중요하지가 않다. 안타까운 사실은 ‘한보사태 및 김현철 관련 비리사건 등 김영삼 정권의 총체적 비리를 규탄’하며 그런 집회에 나갈 수 밖에 없는 이땅의 청년이라는 것이다. 또한 정부당국이 너무도 정당한 요구를 하고있는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강경한 진압을 자행했다는 것이고, 지금도 그러한 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일 뿐이다. 이것이 곧바로 고 류재을군의 죽음을 부른 것이다.
 정부의 이런 강경진압은 지난 해 4월 총선이후 진행된 ‘한총련 씨말리기’ 음모로 시작하여, 8월 ‘연세대 통일투쟁’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그리고 한총련의 모든 행사를 원천봉쇄하고 폭압적으로 강경진압해 왔다. 이렇듯 고 류재을 군의 사망은 정권의 ‘학생운동 씨말리기’ 음모속에서 진행된 살인적 폭압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언론에선 고 류재을 군이 사망하기가 무섭게 평화로운 시위도중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당시 전투경찰의 직격 치루타노가 치열했던 투석전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노수석 열사가 ‘교육재정 확보, 대선자금 공개’를 외치며 정권의 폭압적인 토끼몰이식 진압에 압사당한 것을 개인의 심상마비로 몰아부쳤던 것과 같은 상황으로 몰아부티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렇듯 우리 앞엔 부패 · 살인 · 비리 정권의 총체적인 한계가 펼쳐져 있다. 이에 고 류재을군은 20살의 젊은 생을 채 펴보기도 전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나이에 이땅 청년들의 가슴에 불씨 하나를 안겨주고 간 것이다. 97년 3월을 살아가는 이땅의 청년들에게 우리가 가야할 길을 바로 알려주고 간 것이다.
 
 유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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