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 일 관계의 재정립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이 한국 사람이 일본을 보는 견해의 일단이다. 2차 대전이후 정치, 군사 안보,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가장 밀접한 접촉과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전망이다. 특히, 정치와 군사 안보 측면에서는 미국의 주도적 역할하에 한국과 일본간의 동반자 및 협력관계가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과 이본간의 신안보조약의 체결로 동북아에서의 일본의 정치 및 군사적 역할이 증대 될 것으로 보여 한일 합방을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일본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발맞춰 보수적이고 국수주의적이며 또한, 잠재적으로 팽창주의적인 일단의 일본 정치인 및 관료들은 구태의연하고 왜곡된 일제시대의 정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국 위주의 망상에서 비롯된 발언으로 한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으며 한일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여태까지 한국과 일본간의 경제 관계는 한편으로 공생 및 상호의존 관계로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속관계로 파악할 수도 있다. 한 · 일간의 밀접한 통산 및 무역 관계, 그리고 범세계적인 분업 체계 내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경제 관계를 논할때는 상호의존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고질적 무역역조, 일본의 하이테크기술 및 상품에 대한 의존, 일본의 기술이전의 회피와 한국 기업의 따라잡기 (catch up) 정신의 실종으로 한일간의 경제 관계는 대등한 상호의존 관계로 보기 보다는 종속관계로 간주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90년대에 들어서도 한국의 일본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와 격차는 심해지고 있어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망되는데, 특히 기계류 등의 자본재 산업의 발전과 하이테크 산업부문의 중점 개발이 시급하다고 본다. 경제적 자율성은 정치적 자율성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한일의 문화 관계는 서로 유사하기도 하고 색다른 점도 많이 있으나 서로 간의 문화를 비하하며 경시하면서 멀리하는 것보다는 서로간의 문화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자녀 보다 잘 이해하려 노력하고 서로 색다른 부분을 존중하면서 인정하는 관용이 필요하다. 일본의 문화를 ‘외색 문화’ 더 나아가서는 ‘쪽발이 문화’로 분류하면서 천시하고 경멸하는 데에는 한일 간의 건전한 관계를 발전시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최근 들어 중요한 사실은 일본이 경제, 무역 미치 산업정책의 성공으로 명실공히 선진공업국으로 급부상하였고 이에 힘업어 최근에는 국제 사회에서 정치 및 군사대국으로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일본 지도급 인사들의 망언으로 일본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으나 범 세계적으로 볼 때 경제 및 산업발전의 성공에 힘입어 일본 국가의 위신과 그 대외적 이미지는 많은 국가의 관심을 끌기도 하며 또한 많은 호감을 받기도 한다. 일본은 이제 과거의 침략과 찬탈하는 국가, 무자비한 국민성, 전체주의 체제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영향력 있으며 또한 많은 잠재력을 지닌 선진국의 하나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 및 국민들도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재검토할 때인 것이다.
 우리는 한일 관계는 어떻게 설정이 되어야 양국의 동북 아세아 그리고 범 세계적 견지에서 바람직한 관계가 유지될 것인가. 어떻게 한일 합방의 망령을 영원히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우선 한일간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그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본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보다 더 존경해주고, 한국의 국가 이익에 대해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지 않으며, 과거 일제시대 때 한국이 피해 받은 사건이나 사항이 밝혀질 때마다 일본 정부 및 국민은 백배사죄하고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 중국, 미국 등에 과오를 범한 일본이 사죄를 반복하고 배상을 하는데 지쳐서 인지, 아니면 이제 그들의 역량이 증가하고 국제적 지위가 비약적으로 높아져서 그런지 일본 정부는 이제 수세적이며 저자세적인 입장에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입장으로 관료들의 잇단 망언, 독도 영유권에 대한 완강한 주장,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회피, 그리고 동북아에서 일본사력의 증강과 역할 확대 등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 외교정책의 방향전환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를 보다 안정되고 우호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서는 나름대로 체계적인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과거 한일 합방 전 일본의 정치인, 군사 지휘관, 그리고 정부 관료들은 한국을 침략하고 병합하는 데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않았다. 그들은 구한말 조선의 미개한 문화를 선진 문화로 바꾸어 주고, 비효율적인 정치경제 구조를 개선하여 한국인들에게 번영과 복지를 보장해 준다는 명분으로 한국을 병합한 것이다. 현재 일본은 일본의 정치, 군사 지도자 및 일본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깊이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과연 한국의 정치 구조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지. 한국의 경제 구조 및 생산 체계는 보다 발전적인지. 한국의 문화는 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한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외교정책이 존재하고, 국가의 위신이 손상되지는 않았는지.
 장래 한 · 일관계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국내문제를 재정립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힘에 간접적으로 편승하거나, 일본의 과오를 들먹여 반복적으로 양보를 얻어내는 데에는 한계에 달했다. 우리는 일본인들로부터 존경심과 두려움을 불러 일으켜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들이 우리에 대해 우호와 호감의 감정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이러한 가정을 가져야 만이 한일관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이며 상호 호혜적인 바탕에서 발전될 수 있다. 더 이상 식민지적 발상이나 종속적인 입장을 가져서는 안되고 보다 자율적이며 전략적인 발상이 요망되는 것이다. 한일 관계의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경제 문제 등을 보다 거시적이며 근본적인 시각으로써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 상 태
(한남대 정외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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