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월의 대학가에는 은근한 긴장감이 설렘과 뒤섞여있다. 대학생이 되기 위해 입시 중심의 중고등 시절을 버텨 온 신입생은 대학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설렐 것이고, 재학생은 방학으로 나태해진 몸을 추스르며 위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야릇한 불안감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긴장감은 다행히도 해마다 대학이 맞이하는 익숙한 모습이다.

  사실 진짜 긴장되는 변화는 해일처럼 일어나며 우리의 세계 전체에 가해지고 있다. 디지털기술 세계, 물리세계, 생물 세계가 융합되어 경제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4차 산업혁명’ 용어가 소개된 지 10여 년 만에, 생성형 AI인 챗GPT에 뒤이어, 간단한 글을 마치 매직처럼 생생한 동영상으로 바꿔놓는 새로운 AI 시스템 ‘소라’(Sora)의 개발이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제 교수의 홀로그램으로 강의가 진행된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다른 모든 사회적 요인들과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예기치 못한 많은 변화와 도전을 낳고 있다. 인간의 사유를 통해 생성되고 축적되었던 지식이 인공지능에 의해 생성되고 조정될 때, 대학 역시 도전에 부딪힌다. 인류의 지식 탄생의 산실이자 앎의 전수를 통해 그 사회의 건전한 시민을 양성해 온 대학은 이제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와 비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정보기술혁명이 일으킨 시대적 변화뿐만 아니라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들이 낳은세계 최저출생률, 그로 인한 학령인구와 미래 노동인구의 급감, ‘지방시대’라는 말 잔치 속에 실상은 ‘인(in)서울’ 대학으로 학생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집중 정책, 지방소멸의 가속화 등으로 문제가 더욱 복잡화되고 있다. 교육부는 과학기술 창달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면서도 국가 연구개발비를 삭감하고, 사립대와 국립대를 한데 몰아놓고 경쟁시키는 ‘글로컬 대학 30’ 등 앞뒤 맞지 않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와 늘 한 쌍으로 온다지만, 한국 대학, 특히 국가거점국립대로서 우리 대학의 위기감은 더욱 크다. 정부는 과연 국가발전의 근간인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과 국립대의 가치와 의미를 알고는 있는 것일까?

  당장, 교육부의 ‘무전공 제도’는 대학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무전공 제도를 통해 개별 학과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인재를 육성하는 방안은 분명 대학이 논의하고 추구할 수 있는 방향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무전공 제도가 초래할 장단점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장기적 안목과 대학의 자율성 아래 추진되어야 할 사안을 교육부는 뚝딱 만들고, 늘 하던 대로 재정지원의 고삐 아래 대학을 통제하며 우격다짐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불합리함 속에서도 우리 대학 본부와 모든 교수가 함께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새 비전과 리더십 아래 대학구성원이 합심해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의 빠른 총장 임명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학생들은 취업 준비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이 시대와 사회 구조적 변화를 꿰뚫어 보며 학문융합적 역량 갖추기에 노력하고, 최첨단의 응용지식뿐만 아니라 기초학문의 체력을 균형 있게 함양해야 한다. 학생들의 지적 열망이 교수들의 교육 소명과 일치해야 한다. 사유 능력과 올바른 판단 능력이 없다면, 그리고 공감 능력과 공동체 실천이 없다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 AI에는 그것들이 없다. 대학에서 이러한 능력을 키우고 경험하려는 자세, 그것이 지금의 변화를 맞이하는 우리 학생들 모두의 자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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