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공습으로 어린이가 병원에 실려왔다. 사진/ 알자지라 방송 제공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공습으로 어린이가 병원에 실려왔다. 사진/ 알자지라 방송 제공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인간 목숨이 파리 목숨이던 때가 있었다. 1914년에 발발해서 1918년 끝난 1차 세계대전은 약 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각국의 군부는 병사들에게 달랑 총 한 자루 쥐여주고는 전쟁터로 마구 돌격시켰고, 겨우 몇 미터 진격을 위해 70만 명을 희생시켰다. (베르됭 전투) 1939년 발발한 2차 대전에서는 최소 육천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반인륜적인 집단학살이 일어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는 한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무겁고 중대한 것인지, 전쟁이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후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등 승전한 연합국을 중심으로 국제연합(United Nations, 이하 유엔)이 창설되면서, 유엔은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규약 등의 법령을 세워 인간의 존엄성을 강력히 보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근래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통해 파괴적인 살상 무기 앞에서 바스러진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목도하고 있다. 

참호전 양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재현됐다.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AP 통신 제공
참호전 양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재현됐다.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AP 통신 제공

  전쟁이 파괴한 인간의 존엄성 

  유엔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려 1만 명이 넘는 민간인 사망자를 발생시켰고, 1,700명의 어린이가 희생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1,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과 132명 정도의 이스라엘인이 인질로 억류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가자 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숨진 가자 지구의 민간인 사망자가 2만 명을 넘었고, 그중 74%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발표했다. 

  #1 집단학살의 현장, ‘부차’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두 달째인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소도시 부차를 점령 중이던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400여 구의 민간인 시신이 드러나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학살 의혹이 제기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의 조작이라며 강력히 부인했으나, 유엔은 긴급총회를 열어 93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했고, 국제형사재판소는 조사단을 꾸려 부차에서 일어난 전쟁범죄를 조사했다. 

  부차 집단학살 논란 직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러시아군 철수 이전에 찍힌 위성 사진에는 10여 구의 민간인 시체가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또한 미국의 ABC뉴스가 공개한 우크라이나 군 드론 촬영 영상에는 장갑차를 탄 러시아군이 거리를 지나가던 민간인에게 총을 발포해 살해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부차에서 총 458명의 민간인이 총상과 방화, 고문으로 숨졌고, 심지어 손과 다리가 결박된 채 머리에 총알구멍이 있는 민간인 시신 수십 구가 매장된 집단 매장지까지 발견했다고 밝혔다. 

  #2 복수 혈전에, 도시는 피바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한 당일에만 천 명이 넘는 민간인을 살해했고 240여 명을 인질로 납치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불에 탄 어린이들의 시신, 배가 갈린 채 머리에 총을 맞은 임산부와 살해당한 태아의 시신 등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잔혹한 만행을 발표하며, 하마스 습격 당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봉쇄했다. 

  분노한 이스라엘은 36만 예비군 총동원령을 선포해 가자 지구 일대에 병력을 집결시켜 총공격을 가했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대피지역으로 지정했던 가자 남부지역 200여 곳에 대용량 폭탄을 투하했다. 또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작전본부로 이용됐다’는 구실로 가자 지구 최대 의료기관인 알시파 병원과 알샤티 난민촌 등 민간 시설에 무분별한 폭격을 퍼부어 국제 사회의 규탄을 받았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 첫 3주 동안 발생한 사망자 61%가 민간인이었다.  

  #3 고문, 성범죄 정황까지 

  지난 10월 유엔 조사위원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에게 고문, 강간, 성폭력 등을 저지르고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러시아로 납치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조사위원회가 유엔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살고 있던 집에 들이닥쳐서 여성들을 강간했고, 그들의 가족을 고문하거나 죽이는 등 또 다른 전쟁범죄를 자행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하마스의 성범죄를 목격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수없이 쏟아졌고, BBC와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 경찰이 수집한 의료진 및 목격자의 증언이 자그마치 1,500건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외신 언론과 유엔은 하마스의 잔혹한 만행을 강력하게 규탄했고, 유엔 조사위원회는 하마스의 성범죄를 중심으로 전쟁범죄 조사에 착수했다. 

  #4 21세기판 ‘참호전’ 

  1차 세계대전에서도 탱크가 존재했지만, 아직 보편화되지 않아서 병사들은 겨우 총 한 자루를 쥐고 맨몸으로 적군에게 돌격해야 했고, 실질적인 진격은 하지 못한 채 수많은 병사가 참호에서 목숨을 잃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드론, 탱크 포격, 미사일 폭격 등 고착 상태를 타개하는 살상 무기의 발달로 참호전은 거의 사장됐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잔혹한 전쟁으로 물들였던 참호전의 악몽이 21세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재현됐다. 양국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내 바흐무트 주변에서 10개월 동안 아주 협소한 면적을 두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영국 국방부는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군이 탄약이 부족해 구식 총과 삽만으로 싸우라는 명령을 받는다고 밝혔다. 게다가 눈이나 비가 내리면 참호의 진흙 바닥에 차가운 물이 고여, 병사들은 국소 저체온증에 걸리거나 피부 괴사를 막기 위해 발을 절단해야 했다. 

  #5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총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부지한 것도 잠시,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어야 했다. 유엔난민기구의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난민이 급격하게 늘어난 주요 원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었으며, 우크라이나 난민의 수는  2021년 말 2만 7천 명에서 전쟁 발발 8개월 이후인 2022년 말에는 570만 명까지 늘어났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난민이 발생한 상황이다. 

  가자 지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세계식량계획(WFP)은 가자 지구 주민 220만 명 가운데 대다수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해 끼니를 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내 식량과 연료 반입을 제한하면서 가자 지구에서는 12만 명이 짐을 싸서 피란길을 떠났다고 유엔은 발표했다. 수만 명의 희생에도 전쟁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가자 지구 일부 주민들은 굶주림에 유엔의 식료품 창고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쟁은 왜 시작됐나 

  지정학적 분쟁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며칠 전, 우크라이나와 분리를 선언한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독립을 인정하며, 러시아는 친러시아 반군 세력과 대치 중인 우크라이나 군의 퇴각을 촉구했다. 그 후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특별 군사작전’을 개시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공격하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취임 이후 국가 주요 목표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전쟁 발발 3개월 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2021년 연말 기자회견에서 “나토가 더 이상 동쪽으로 팽창해선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강력히 반대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동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푸틴의 표현처럼 ‘미국이 우리 집 현관 바로 앞에 미사일을 갖다 놓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나토 조약 5조의 ‘집단방위 원칙’으로 인해 미국, 영국 등 나토 회원국인 서방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군사를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줄곧 나토의 동진을 반대했고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가입을 염원해 왔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전체 국토의 약 70%가 농경지로,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릴 만큼 넓고 비옥한 땅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다. 전쟁 전 2021년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출 품목 중 해바라기유는 세계 1위, 보리와 옥수수는 세계 4위, 밀은 세계 6위, 콩은 세계 7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4억 명에게 공급됐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나토와의 완충지대이자, 영토 대부분이 드넓은 평야 지대로 옛 소련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푸틴에게 금싸라기 땅이다.  

  이스라엘-아랍권 분쟁 

  한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뿌리 깊은 분쟁 역사 가운데 하나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돼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영토로 몰려오게 됐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잃어버리고 주변 중동 지역으로 떠밀렸다. 이에 이란, 팔레스타인 등의 아랍권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해 전쟁을 벌였으나,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에 일어난 네 차례의 중동 전쟁 모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현재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를 이스라엘이 차지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규모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다.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무력 충돌을 벌여왔다.

  이번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발발 원인에 대해 우리 학교 국토안보융합학과 최장옥 교수는 “하마스는 내부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집권세력인 파타와의 주도권 경쟁을 겪고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가자 지구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제고시켜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이스라엘을 침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쟁은 어떤 변화를 불러오는가 

  미-중·러, 새로운 냉전의 시대   

  21세기에서 강대국의 패권 다툼은 주로 양국 간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의 대결 양상을 띤다.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된 후, 중국이 급부상하며 미국과 중국은 세계 최고 경제 대국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국과 소련이 갈등했던 냉전 시대에 유럽이 ‘서유럽’과 ‘동유럽’으로 갈렸던 것처럼 세계는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과 중·러를 중심으로 한 진영이 대립하는 신냉전 시대로 들어섰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 영국 등 28개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수물자를 지원했고, 북한, 이란, 벨라루스 등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했다. 또한 미국이 러시아의 방위 산업과 군사를 도운 중국 기업들을 수출 통제 대상에 올렸고, 이에 대해 중국은 비합리적 탄압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최 교수는 “이번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지만 전 세계의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국제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은 이스라엘 선박을 공격한 예멘의 후티 반군,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 친이란 세력을 이용해 이스라엘과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최 교수는 “현재의 세계는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심화돼 있기 때문에 과거 냉전 시대와 같이 완전히 단절된 대립 체제로 환원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신냉전 구도 긴장감은 동북아시아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반도 상황은 한국이 미국, 일본 중심의 편향외교에 더해 양안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에 간섭하면서 한중관계가 점점 악화됐다고 말했다. 간접 우회 방식이라고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지원 문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북한-러시아 관계를 밀착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전쟁은 삶을 어렵게 한다 

  전쟁으로 인한 타격은 전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과 곡물 가격이 폭등했고, 유럽 경제는 역성장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각각 세계에서 손꼽히는 곡물 생산국과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자원 보유국으로, 전쟁은 식료품과 에너지의 공급 불안을 야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한 2022년의 겨울에 도시가스의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전년 대비 4.5배 이상 오르며 난방비 대란을 겪었고, 식자재 원료 가격이 인상돼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6% 상승했다. 

  한편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은 미국에 의존하고 시장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서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미·중 갈등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 갈등 당시 중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하자,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기업 또한 미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고,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주요 품목인 중간재의 수출도 함께 감소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점차 감소하며 하락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2022년 기준 22%대로 여전히 상당한 무역의존도를 보인다.   

  그러나 정 교수는 “세계적으로 분업 관계가 상당히 형성돼 있어 어느 한 국가든지 역할을 못 하게 되면 전체 시스템이 깨지는 상황이라 우리나라가 무조건 한 국가의 편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강대국의 패권 다툼 사이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시사했다. 

  전쟁을 멈춰야 하는 이유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는 조국을 위해 전장으로 가라는 장군의 연설에 환호한 젊은 청년들이 너도나도 자원입대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지 40일 만에 영국에서는 100만 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자원입대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되는 현실이었고, 겨우 삽과 총 한 자루로 무수한 싸움에서 버텨내야 했다. 

  그러나 살상의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려고 한다. 전쟁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전쟁 앞에서 인간의 목숨은 전선을 사수하기 위한 한낱 도구로 전락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전혀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다. 전쟁은 결국 극소수의 이득을 위해 대다수를 희생시키는 비열한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 무고한 희생 앞에 그 어떤 대단한 전쟁의 명분도 용납될 수 없는 광기다. 이것이 지금 전쟁을 멈춰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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