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참으로 희망찬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디 종교성이 강한 행사였지만 지금은 종교의 여부를 막론하고 모두가 즐기는 축제가 되었으니, 그리스도 또한 기뻐하지 않을까요? 평소 사람 많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저이지만 이런 날 만큼은 희망찬 공기 속으로 저를 내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마 이쯤 되면 당연히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리라 기대하셨겠지만, 남들 하는 건 이상하리만치 피해가고 싶은 홍대감성의 소유자로서 이런 일반적인 전개방식을 고수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네, 평소처럼 홍민기의 일상 이야기입니다.

  저는 교내 토론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동아리의 이름은 논함입니다. 지도교수로는 우리 학과 박찬종 교수님께서 부임하고 계십니다. 2학기 들어 미래설계상담을 신청했습니다. 우연히도 미래설계상담도 박찬종 교수님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수님은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인격적으로도 능력적으로도 말이죠. 그날도 어김 없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딱딱하고 형식적인 상담보다는 가벼운 인사를 먼저 건네시던 교수님이셨습니다.

  “민기 학생, 오랜만이네요. 고함... 잘 하고 있어요?” “?” 약 1.5간의 정적.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제 머릿속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고함을 잘 하고 있냐는 게 무슨 말씀이지?’, ‘샤우팅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우리 동아리 이름은 논함인데?’, ‘찾아뵌 지가 오래돼서 잊으신 건가?’, ‘암만 그래도 교수님이 동아리 이름은 잊으셨다고?’, ‘사실 우리 동아리 이름은 고함이 아니었을까?’. 이런 와중 대답의 시간은 돌아오고 저는 그저. “네! 잘하고 있습니다!” 라며 해맑게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상담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요. 상담 내용이 입력되었다는 알림에 통합정보시스템에 접속해보니 저희 동아리 이름은 자연스럽게 고함이 되어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농담을 하셨거나 잠시 헛갈리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굳게 믿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약 한 달이 지나 12월을 즈음하여 한 번 더 상담을 진행했었는데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동아리에 관련된 질문을 하시더군요. “동아리는 잘 하고 있어요?”, 저는 한 치 흔들림 없이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아.토.론.동.아.리.논.함.말.씀.이.십.니.까?”

  교수님께서는 허공을 응시하며 짐짓 생각하시더니. “오우” 라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시고는 “맞아요 논함” 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셨습니다. 동아리의 이름이 바로잡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건 뭐랄까...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한 교수님의 의욕도, 진즉에 찾아 뵙고 동아리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은 저도 어느 하나 잘못된 건 없었습니다. 다만, 쓸 데 없이 혼란스러운 이름을 지은 이름 모를 선배님에게 해당 사건의 발생원인을 돌리고 싶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홍민기 (사회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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