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아침 창문 너머로 바라본 세상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고 하늘엔 눈송이가 천천히 떠다녔다. 평화로웠다. 어떤 걱정도 쓸모없다는 듯이. 한동안 놓지 못했던 복잡한 마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옷을 챙겨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좀처럼 눈을 보기 힘든 지역에서 자랐다. 눈이 쌓이는 것을 보기도 힘들뿐더러 아주 조금 눈이 흩날려도 휴교하고 놀러 나가는 곳이었다. 먼지처럼 흩날리다 사라져 버리는 눈에도 신나서 뛰어놀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런 날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대전에 올라온 지 꽤 된 지금도 눈이 오면 설레고, 할 일이 없어도 괜히 나가서 거리를 돌아다니게 된다.

  하얀 학교의 도보를 따라 도서관 쪽으로 향했다. 정문에서 도서관까지, 늘 걷던 길이지만 걸을 때마다 참 도서관이 멀다고 느껴진다. 특히 빗물에 신발을 다 젖게 만드는 장마철과 아침부터 쨍한 햇빛에 지치게 하던 한여름에는 그 길이 더 길어 보였다. 그렇게 도서관에 들어서면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나올 일이 거의 없었다. 한 번씩 나오면 하늘의 색은 그새 변해 있었고,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서관 지상층의 입구 앞에서 정문과 그 너머를 내려다보면 예쁘기도, 아득하기도 하다. 그 풍경을 보며 울먹이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멍하니 학교를 바라보고 있으면 조각공원에서 게임을 하는 학우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릴 때도, 축제 공연을 하러 온 가수의 노래가 공기를 울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즐거움이란 감정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특별한 날도 특별하지 않게 보낸 1년이었다. 여러 기념일과 생일, 축제 등에도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그 풍경을 보았으니까 말이다.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그런 생활도 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며 자주 좌절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는 더 불투명해 보였고 불안감은 영역을 넓혔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게 있다면 언젠간 이것도 끝이 난다는 사실이다. 끝을 바라보며 달려가기만 했던 기간을 이제는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걸그룹 첫사랑(CSR)의 멤버들은 매년 자신의 나이를 상징하는 오브제를 직접 선정한다. 이 그룹의 멤버 금희는 2023년의 오브제로 ‘축구’를 골랐다. <Delight> 앨범 쇼케이스에서 밝힌 이유는 이렇다. 전반전에는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시작했다면, 후반전을 갈수록 힘들고 지치는 데도 많은 위험과 변수를 이겨내어 후반전을 마무리하고 우승하는 경기에 위로를 받는다고.

  응원하던 팀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기쁘지만, 그 기쁨은 단지 우승이라는 결과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90분 이상의 긴 시간 잘 버텨내고 달린 과정이 그 결과를 빛나게 한다. 이처럼 어떤 곳으로 향하는 과정 위에 서 있는 우리가 힘든 것은 그만큼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모든 게 끝났을 때, 어려웠던 시간을 돌아본다면 그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정오가 지나 눈이 그쳤지만, 여전히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의지를 다지며 시작한 2023년도 마지막에 이르러간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첫사랑의 노래 <Anding (&)>의 가사처럼 한 해를 마무리한 우리는 이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힘들었던 기억과 감정들은 하얀 눈 아래 덮어 두고, 조금은 희망적인 마음으로 2024년을 맞이하고자 한다.

김동영 (경제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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