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수탉의 울음이 새벽을 깨울 때까지

  며칠째 극렬한 두통이 그를 방문했다. J에서 비롯된 기억의 상흔이 깊게 짓눌리는 듯했다. 그는 그 고통을 자신이 그만 J를 떠올려 버렸기에 겪어야만 하는 것이라 여겨 두 팔을 벌려 품어내려 했지만 도가 지나친 거대한 아픔이었다. 참다 못해 방문한 병원에서 뜻 밖의 원인을 제시했다. 그를 괴롭힌 고통의 뿌리는 맞물릴 곳 없이 뻗어 자라난 오른쪽 위 사랑니였다. 맞물려 부딪혀야 할 아래 사랑니 없이 끊임없이 자라나 신경을 건드렸고 그것이 극심한 편두통을 유발했다는 진단이었다. 워낙 깊게 뿌리를 내린 녀석이기에 뽑아내도 흔적을 남길 것이라는 의사의 경고에도 그는 주저 없이 이를 뽑아버렸다. 그러자 그간의 시끄러운 고통에서 즉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J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간 두통과 J는 한 몸처럼 뒤섞여 버렸다. 통증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할 때마다 J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고, 그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역설적이게도,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뿐이었다. 그는 애써 참지 않고 J를 마음껏 사유할 권리를 되찾았다. 그것은 그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어지럽게도 미묘한 감정이 그의 귀향을 부추겼다. 그는 그곳에서 J를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압해도, 그 머나먼 섬에서.

  차로 꼬박 네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작은 섬. 장거리를 이동할 때마다 J는 매번 운전을 자처했다. 운전에 능숙했던 J는 굳이 그를 조수석으로 밀어내고 출발지로의 운행을 맡곤 했다. J의 실력을 믿었던 그는 옆에서 자주 딴청을 피웠다. 그가 FM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때였다. J도 굳이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태어나기도 전의 낡은 노래를 찾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오렌지색 컨버터블을 몰고 싶다는 소망에는 ‘J와 함께’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태양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수평선 너머로 몸을 숨기는 것을 바라보며 바닷바람과 온 몸으로 포옹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J가 있어야 할 빈 조수석에 먼지 한 줌만큼만 서려 있을 뿐이었다. 대신 두꺼운 레더 패딩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신에게서 J의 공간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이 두려웠다. 

  압해도에 도착한 그에게는 어머니의 가게보다 먼저 들를 장소가 있었다. 겨울의 압해도의 성난 바다도 이 곳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 간다. 그는 20년도 더 된 녹슨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이제는 제법 진부하다고 느꼈다. 이 곳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J를 먼저 떠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J와 겨울을 보낸 적이 없다. 그가 품고 있는 J와 겨울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J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제야 미묘했던 감정이 올바른 위치를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엉켜 있던 톱니바퀴가 맞물려 다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철컥, J는 내게 그런 존재였구나. J를 억누르려 할 때마다 그는 오히려 J를 확신했다. 그는 J를 잊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고향의 바다에 J의 기억을 수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J와 본적도 없는 그 겨울의 바다가 사뭇 그리웠던 것이다. 그는 간판도 다 떨어져 가는 오래된 횟집 위층에 자리 잡은 유년기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낡은 나전칠기를 뒤져 테이프 꾸러미를 찾아냈다. J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되감듯이 늘어난 테이프 구멍에 볼펜을 끼워 넣어 정성스럽게 반대 방향으로 감아 돌렸다. 불행히도 먼지가 내려앉은 카세트 플레이어는 제 명을 다한 듯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원히 J를 잊지 못할 자신을 받아들였다.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 없는데, J, 난 너를 못 잊어. 

김호민 (불어불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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