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전의 가요
 해방이전에는 내용의 일상성과 구체성, 집단 창작이 담긴 민요와 서양 음악의 시작을 의미하는 창가, 홍난파의 ‘봉선화’로 대표되는 예술 가곡, 윤심덕의 ‘사의찬미’같은 유행가, 독립군들의 독립 군가 같은 노래가 있었다. 이중 민요의 공동체적이고 주체적인 노래형태와 현장에서 제작, 보급되어 내용의 건강성이 있는 독립 군가는 오늘날의 노래운동과 연관시켜 볼 수 있는 긍정성이 있다.

 해방이후 - 1970년대
 해방이후 미군정의 지배와 한국전쟁, 한강의 기적등을 차례로 겪으며 우리나라의 노래흐름도 바뀌어 나갔다. 맘보, 트위스트, 블루스, 트롯트 등 외래 풍조의 음악 유입과 정권의 필요와 구미에 맞는 문화의 장려가 행해졌다. 그래서 이렇다 할 문화적 전통이 살아있지 않은 가운데 전쟁이 쓸고 지나간 폐허위에 뿌리를 내릴만한 뚜렷한 문화가 없이 텅빈상태, 그러한 공허속에서 대중들을 자극한 것은 바로 미국의 맘보였고, 트위스트였으며 트롯트라는 신상품들이었다. 그후 록과 포크가 등장하여 젊은 꿈과 이상을 전달하고 사회비판적인 노래로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속에 자기 위치를 잡아나갔다. 포크에서 출발하여 통기타 혁명으로 지칭되는 소박하고 민중들의 삶을 다룬 노래가 퍼져나가고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분리되면서 진보적인  내용의 노래는 소위 운동권 음악으로 인식되어간다.

 1980년대 - 지금
 80년대 들어 유신체제의 탄압과 광주항쟁을 겪으며 운동권 음악은 전 학생대중에게 확대되었다. 이때 행진곡풍의 노래보다는 서정성을 띤 노래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은 단순한 구호의 외침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건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80년대 후반 합법 음반화 되면서 노래운동의 중요한 입지적 토대가 되어 이전보다 자유스러운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민중가요의 성공과 노래 운동 단체를 태동시키게 되었다. 최근에는 천지인이나 메이데이같은 그룹들이 록과 접목시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방향
 노래운동의 조직화는 그리 오래 돼지 않았다. 85년부터 노래패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본질적인 측면보다는 일종의 ‘따까리’기능으로 선전선동하는 임무만을 맡아왔었다. 그러나 차츰 문예일꾼이라는 말로서 자주문예를 고민하고 전문성과 정형화를 이루어내 왔다. 이제 민중가요는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활동의 폭과 주체들이 다양해지고 대중음악, 국악 등 여러 종류의 음악을 수용하는 등 발전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어려운 여건을 락과 언더그라운드의 세력화, 그리고 대중적인 부활을 기도하면서 해결하려 한다. 그것이 진정한 노래운동의 방향이고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특정 아티스트의 결집된 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지배문화구조의 시스템을 등에 업고 그들을 배치하면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대중화에 대해서는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대중화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중가요로의 진출은 대중화의 기본 척도가 아니다. 내용적으로도 평준화를 합리화시키면 안된다. 오히려 차별화는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민중가요와 노래운동은 대중화라는 이름하에 아류팀들을 양성해내거나 그들을 뒤 쫓아다니는데 급급하게 될 것이다. 또한 노래운동은 장르의 진보성이나 노래안의 가사 속에서 국한되면 안된다. 노래문화가 이윤창출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극복함으로써 대중들의 창조적 향유가 이루어 질 수 있다.
 민중가요는 그동안 자신의 독자적인 구조를 형성해 왔다. 그것이 비록 거대한 자본의 힘에 비해 상대가 안될 정도로 미약하더라도 생산, 유통, 향유의 전과정에서 자신의 방식을 유지해 왔다.
 특히 향유의 측면에서는 대중을 소비자로 전락시키지 않았으며 대중의 참여와 자발성을 극대화 시키려 노력해 왔다. 그것은 노래운동이 생산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며 일정정도의 수용자층의 운동으로서 발전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민중가요, 노래운동이 이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 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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