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학교에서 독서 골든벨이 열렸습니다. 학생들에게 실천하는 독서문화를 권장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하기 위한 뜻깊은 행사였죠. 이번 독서 골든벨 지정도서는 쉽게 읽는 백범일지와 동물농장이었습니다. 준비기간은 차고 넘치게 있었습니다. 약 3주의 시간이 있었죠. 마음만 먹었다면 10번도 더 돌려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마음을 먹었다면 말이죠. 저는 단식을 했나 봅니다. 대회 날은 점점 다가오고 이래저래 할 건 많은데, 아직 1회독도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만이 저를 감쌌습니다.

  사실 제가 대상을 타든 탈락을 하든 아무도 신경은 안 쓰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입니까. 다른 사람 눈치 보기 바쁜 사회가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명색의 토론동아리 회장인데 독서 골든벨 나가서 수상 없이 탈락하면 체면이 땅바닥에 떨어지리라고 말이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책을 읽긴 읽어야겠는데 당장 동아리 MT는 다가오고 초조할 따름이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궁지에 몰렸을 때 IQ가 15정도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쫓기듯이 한 선택은 바람직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저는 대회 일정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려 MT에 가서 책을 읽는다는 전대미문의 발상을 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은 대학생일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MT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신분이죠. 보통 MT라고 하면 다 같이 모여 술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서로 친해지는 게 핵심인 행사입니다. 취식, 음주, 소음. MT의 필수요소이죠. 

  그럼, 이 세 가지가 절대 허용되지 않는 곳은 어디일까요. 맞습니다. 도서관입니다. 무언가를 먹어서도, 술을 마셔서도, 그리고 시끄럽게 떠들어서도 안 되는 그런 정숙의 공간입니다. 여기선 보통 책을 읽습니다. 근데 저는 대체 왜 도서관과 정반대인 MT에서 굳이 굳이 책을 읽겠다고 나선 걸까요. 그래도 최소한의 사고력은 남아있었나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신나게 노는 와중에 책을 읽고 있으면 산통을 깰 것 같아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책을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마치 카페의 백색소음 같아 제법 집중이 잘 되더군요.

  사건은 책을 읽기 시작한 지 30분 뒤에 발생했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짐을 가지러 온 동아리원이 방을 헤집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지금 책을 읽는 데 방해돼서 거슬렸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 이상한 건 제 쪽입니다. 문제는 소지품을 찾은 동아리원이 방을 나가며 문단속을 잊었다는 점인데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설마 책 읽는거여???” 해당 발언을 기점으로 여러 사람의 관심이 저에게 쏠리기 시작했고 그냥 조용히 책을 읽고 싶었을 뿐인 저는 어느새 공공연한 구경거리가 되어있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설마 책 읽는거여?” 라는 발언 뒤에 이어진 “저거 컨셉임?” 이라는 발언에선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힘들더군요. 책을 다 읽고 방을 나서니 다른 사람들에게 조리돌림당한 것은 물론이고 말입니다. 제가 얼마나 처절하고 간절하게 독서 골든벨을 준비했는지 좀 느껴지시나요?

  과연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정이 아름다웠으니까 결과도 아름다울까요? 저는 첫 번째 문제에서 탈락했습니다. 이후 네 번의 패자부활전이 진행되었으나 한결같이 부활에도 실패했죠. 이건 뭐랄까... 나는 무엇을 위해서 노력한 건가, 명예도 재미도 챙기지 못했다면 나는 어디서 위안을 삼아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한 하루였습니다.

홍민기 (사회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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