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수탉의 울음이 새벽을 깨울 때까지

  그는 그저 음식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있을 뿐인 고등어 자반의 눈깔이 자신의 것과 닮아 있다는 생각에 문득 불쾌감이 들었다. 광활한 바다를 헤엄쳐야 할 이 등푸른 생선이 눈도 감지 못한 채로 식탁에 올려진 까닭은 자신에게 닥친 찰나의 죽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싹 타들어 간 지느러미는 음식의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올려지기 전의 그것은 푸른색의 대해를 훌륭히도 내저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당연하게도 그는 고등어목 고등어과의 이 생선이 눈깔을 가려줄 눈꺼풀을 애초에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생물학적 사실을 알고 있다. 생기를 잃고 만 그것을 자신의 안구와 비유하는 일 따위가 무용하기 그지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손수 만들어 낸 껍데기를 입고 사회의 착실한 톱니바퀴가 되어 살아가는 처지가 결국 백반집의 7천 원짜리 고등어자반과 무엇이 다르냐는 자조가 이어질 뿐이었다. 톱니바퀴는 결국 녹이 슬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실낱같이 붙어 너덜거리는 생명의 숨이 끝내 끊어지는 그 순간만큼은,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간 이 생선처럼 처연하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끝으로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낡은 장지갑에 올바르게 뉘어져 있는 만 원짜리 지폐를 노파의 손에 쥐어주고 가게를 나섰다. 그가 처음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을 땐 고집을 피우며 한사코 거절하던 노파는 이제는 익숙한 일인 듯 그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것은 노파가 청력을 상실했다는 사실 때문에 베푸는 얄팍한 동정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연신 고등어를 굽는 노파의 뒷모습이 이른 새벽부터 밭일을 나가던 자신의 할머니의 모습과 겹쳐 보였을 뿐이었다. 문득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이 가게에 들를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품 안쪽 주머니의 손 때가 타 거뭇해진 사직서를 그대로 제출할 수는 없었다. 봉투를 새것으로 교체해 정성스레 이름을 적어 넣었다. 부장은 두어 번 만류했고 인수인계 기간을 고지했다. 다행히도 그게 전부였다. 다행, 단어를 여러 번 곱씹던 그는 불현듯 J를 떠올렸다.

  저녁 여섯 시면 가로등이 켜질 만큼 해가 짧아졌다. 몰아쉰 한숨이 눈에 훤히 보이는 추운 날이었다. 그는 살뜰히도 몸을 움츠려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만추는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얼굴을 비추자마자 곧장 겨울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 지상의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이 추운 날에 J가 떠오른 것은 그에게도 의문이었다. 그가 J와 함께했던 시간은 오직 여름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날들은 추적이는 비에 우산을 챙기지 않으면 서로 만날 수도 없던 장마가 이어졌었다. J와 함께한 마지막 순간마저 비가 내렸다. J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그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연히 떠나갔다. 역사가 끊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다행스럽게 느껴졌던 건지 그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J와의 이야기가 그 길로 매듭지어진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오렌지색 컨버터블을 몰고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등푸른 생선이 최후를 맞이하기 전의 마지막 활주처럼. 그는 다섯 번 만에 차의 시동을 걸었다. 오렌지색도 아니고, 천장이 열리지도 않는 오래된 승용차였지만, 아주 오랜만에 자유를 되찾은 그는 아쉬움을 쉬이 물리칠 수 있었다. 정지선 앞에 서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빨간 불의 기다림을 즐기던 그는 FM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J에게, 40년 된 낡은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는 오래된 테이프에 볼펜을 끼워 넣어 기억을 되감는 느낌으로 이 노래를 사랑한다. J, 우리가 걸었던 추억의 그 길을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김호민 (불어불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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