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롤 대표팀이 메달을 수상한 모습이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롤 대표팀이 메달을 수상한 모습이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안경을 쓴 왜소한 체구의 한 남성.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평소 하던 것처럼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에 접속한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있는 곳이 자택이나 PC방이 아닌 항저우 아시안게임 경기장이라는 것이다. 이 남성의 정체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이자 세계 최고의 유저라고 불리는 페이커(본명 이상혁) 선수다. 우리는 현재 게이머가 국제 스포츠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 게임의 성장기 

  70년대 전자오락실부터 지금의 PC방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일찍이 ‘게임 선진국’이라 불릴 만큼 게임에 ‘진심’이었다.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게임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흔히들 PC방을 떠올린다. 그러나 70년대엔 전자오락실(이하 오락실)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이후 초고속 통신망이 구축되면서 등장한 PC방의 인기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초창기엔 사람들이 집마다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아 각종 PC 작업 등을 위해 PC방을 찾았으나, 컴퓨터 사양이 점차 좋아져 다양한 게임도 즐길 수 있게 됐다. PC방은 해외에도 진출해 ‘PC Room’, ‘PC Bang’ 등으로 불리며 ‘재벌’, ‘먹방’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고유명사 중 하나가 됐다. 심지어 최근엔 게임 중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다. 기존엔 컵라면이나 과자 등만 주문 가능했으나, 특정 PC방에서는 회나 삼겹살처럼 ‘음식점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메뉴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PC방의 성행은 ‘게임 산업’의 발전까지 이끌어냈다. 온라인 게임 플레이에 최적화된 장소가 확립된 것이니 이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빵빵한 사각형 컴퓨터와 담배 냄새가 이용자를 반겼던 1세대 PC방에서는 ‘스타크래프트’가 가장 인기 있는 게임으로 손꼽혔다. 스타크래프트의 성행으로 스타크래프트 스포츠 서울컵이 상금 5천만 달러를 내걸고 개최됐으며, 게임은 더 이상 오락이 아닌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테란의 황제’라 불렸던 임요환과, 그에게 밀려 항상 2등을 차지했던 ‘폭풍 저그’ 홍진호가 우리나라의 첫 프로게이머로 활약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들의 등장을 반기듯 한 해 뒤인 2000년에 ‘KeSPA(한국e스포츠협회)’가 창설됐다. 그렇게 e스포츠는 대중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각인시키며 등장했다. 

  e스포츠도 스포츠다 

  현재 e스포츠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지난 달 초까지 진행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며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우리나라는 4개 종목에 19명의 선수가 출전했으며,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데 성공해 e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증명했다. 

  e스포츠 종목이 아시안게임에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개최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e스포츠를 시범종목으로 채택했으며, 우리나라는 6개의 세부 종목에 출전했다. 비록 시범종목이었으나 이미 그때부터 e스포츠는 국제 스포츠대회에 등판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올해 아시안게임 롤 종목에 출전한 페이커 선수는 ‘롤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등 세계적인 대회에서의 수많은 수상 기록 덕분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른바 ‘월클(월드클래스) 라인’으로 통한다. 흔히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을 월클이라 부르는데, 이는 페이커 선수가 스포츠 선수로서 김하성, 손흥민, 김연아 선수 등과 동일한 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e스포츠는 아시안 게임 정식종목 채택에 이어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가능성 또한 제기됐다. 과거 e스포츠의 올림픽 진출은 토마스 마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회장의 반대로 인해 난관에 봉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e스포츠의 영향력 탓인지, 지난 2021년 열린 총회에서 IOC와 e스포츠간 관계 수립을 정의한 ‘올림픽 아젠다 2020+5’가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그렇게 같은 해 4월 개최된 최초의 IOC 공인 e스포츠 대회인 ‘올림픽 버추얼 시리즈’는 누적 120만 명이라는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e스포츠 선수 양성을 목적으로 한 학원이나 대학 학과도 생겨나는 추세다. 국제대학교 e스포츠과 하재필 교수는 “게임 문화는 하나의 스포츠로서 국가 간의 상호 이해를 매끄럽게 하며 교류를 촉진하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e스포츠는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라며 e스포츠의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흔들리는 e스포츠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e스포츠엔 밝은 전망과 함께 팬들의 걱정 또한 존재한다. 무엇이 e스포츠를 위협하는가. e스포츠 리그의 위기, 그 중에서도 ‘롤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의 문제에 대해 알아봤다. 

  국제 대회에 롤드컵이 있다면 국내 리그엔 LCK가 있다. LCK는 롤 제작사인 라이엇 게임즈에서 주최·주관하는 우리나라의 롤 프로 1부 리그다. 해당 리그의 인기는 이미 2019년에 288만 명이라는 동시 관중 수로 입증된 바 있다. 이러한 LCK 구단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다소 황당할 수 있으나, LCK의 수익 구조가 그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LCK는 지난 2021년 프랜차이즈 모델을 도입했다. 여기서 프랜차이즈 모델이란 구단이 해당 리그의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하며, 리그와 운영 수익을 공유하는 일종의 파트너 체결이다. 물론 모든 구단은 100억 원의 가입비를 지불하고 리그에 가입했다. 이는 KBO(한국프로야구) 창단 팀의 가입비가 60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비용이다. 그러나 큰 기대를 안고 시작한 리그와의 제휴 결과는 참담했다. 같은 해 매출액을 보고한 4개의 구단 모두가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이중 페이커 선수가 속한 T1은 259억 원의 적자를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선수 계약 문제다. 우리나라는 게임 강국으로서 일찍이 명성을 펼쳐왔다. 즉, 우리나라 선수들의 실력이 너무 출중해 굳이 외국인 용병을 영입할 필요가 없다. 반면 우리나라 선수를 영입하려는 해외 팀은 많기 때문에, LCK는 선수 확보 경쟁이 가장 치열한 리그가 돼 버렸다. 더구나 선수 수명이 짧은 e스포츠 특성상 선수들은 자기 몸값을 불리기 위해 대부분 단년 계약을 선호하기에 매 시즌마다 선수들의 연봉은 치솟게 된다. 

  두 번째는 투자 시장의 동결이다. 미국의 긴축재정정책으로 지출이 줄어들면서, 금리가 상승하고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것이다. 그 때문에 장기 투자를 예상하고 있었던 LCK 구단들이 투자가 끊겨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구단들은 독자적인 수익 모델 등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구상한다고 밝혔으나 상황이 나아질지는 미지수다. 라이엇 게임즈 또한 이를 고려해 e스포츠 토토 도입을 모색하는 중이다. 

  한편 e스포츠 리그의 지속성에 대해서도 말이 나오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롤의 인기를 제치고 온라인 게임 순위 1위를 기록한 바 있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의 ‘오버워치’가 2016년부터 6년간 지속된 리그를 결국 폐지한 것이다. 높은 리그 유지 비용 그리고 여러 대내외적인 요인 등으로 유저들의 관심이 끊긴 것이 그 이유로 추측된다. 블리자드는 이전에도 AOS(실시간 공성 게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글로벌 챔피언십을 주최했으나, 4년 만에 폐지했다. 이에 블리자드는 ‘망겜(망한 게임) 제작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렇게 두 리그의 몰락에 LCK 팬들은 큰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게임 문화의 미래 

  위기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스포츠의 한 갈래로서 자리하고 있다. 게이머가 억대 연봉을 벌어들이며,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개선돼 더 이상 게이머가 방구석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게 됐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산 기자회견에서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 회장은 5년 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당시엔 “e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닌 게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게임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사회 인식 변화가 점차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페이커 선수는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인터뷰에서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페이커 선수의 말처럼 현재의 e스포츠는 스포츠로서의 면목을 두루 갖추었다. 게임이 스포츠화된 지금이 바로 게임이 건강한 하나의 문화로서 모두의 인정을 받아야 할 때다. 하재필 교수는 “취미 생활로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다 같이 게임을 당당하게 취미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게임 유저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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