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은 감각으로 기억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신체 어느 구석에 무언가가 파편 조각처럼 박혀 있는 느낌이다. 인지하지 않고 살다가도 그 기억 언저리를 건드리면 불현듯 아픈 감각이 퍼져나가는 것이다. 이윽고 상처에 피가 올라오듯 조금씩 물이 차오른다. 때로 슬픔은 그렇게 밀려온다.

  서울역 옥상정원에서 한참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시끄러운 도시 소음,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립된 질서가 나를 배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등바등 버텨왔던 시간은 어쩌면 저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길게만 느껴졌던 수험기간의 순간들이 드문드문 생각났다.

  홍대에서 한로로의 단독공연을 보고 대전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챙겨왔던 앨범을 다시 꺼내어봤다. 흰 글자 사인 위로 <이상비행(理想飛行)>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비행은 앨범 이름이기도 하고, 첫 번째 수록곡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한로로의 음악 세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상비행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이상을 향해 비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이상을 비행기에 띄워 대중들에게 전달하겠다는 첫 EP 앨범다운 선언처럼 읽히기도 한다. 가수에게 그 두 가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음악을 함으로써 자신의 이상에 다가갈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상비행은 필연적으로 아픔을 수반한다. 이번 앨범 속 <화해>, <사랑하게 될 거야> 등의 가사를 보면 그런 과거에 대한 의연한 태도가 엿보인다.

  이번 EP의 타이틀곡 중 하나인 <화해>는 잠시 지금의 자신에게서 벗어나 멀리서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는 노래다. 힘들어했던 ‘나’와 원망했던 세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빗물에 털어”내고 세상과 화해하고자 한다. 새로워진 ‘나’는 차갑게만 느꼈던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내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 어쩌면 가수로서 그의 이상일지도 모른다.

  <사랑하게 될 거야>는 함께 영원을 꿈꾸던 ‘너’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던 날들을, “피하지 못해 자라난 무던함”으로 돌아보는 노래다. 가사는 말한다. 그렇지만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라고. 여기서 ‘너’를 꼭 타인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고 나아가려면 결국은 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지났다. 높아진 가을 하늘 아래 작게만 느껴지는 나도 언젠간 저 사회 속에 잘 녹아들 수 있을까.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겉돌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었을 때 파편 조각들을 떼어내고 그것들조차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동영 (경제학·4)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