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수탉의 울음이 새벽을 깨울 때까지

  2021년 2월 일병 5호봉, 나는 추위에 얼어버린 연병장에 주저앉았다. 주위의 간부들과 동료들이 소총을 내려놓고 내게 모여들었다. 연신 말뚝을 내리치던 오함마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애당초 나는 현역병으로 입대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아홉 살 때 왕복 4차선을 무단으로 건너다 사고를 당했다. 그때 나는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시속 80킬로로 달리던 승용차가 저만치서 앞만 보며 달려오는 나를 발견하곤 황급히 속도를 줄이고 핸들을 튼 덕분이었다. 오른쪽 정강이가 두 동강 났고 타이어가 쓸고 지나간 살갗 틈새로 허연 정강이뼈가 드러났으며 선홍빛의 살밥이 부글부글 끓어댔다. 의료기술의 도움 없이 자신의 생뼈를 보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초등학교 2학년짜리 어린아이에게 그 광경은 몹시 자극적이었을 터이다. 그렇지만 나의 정신은 병원에 이송되어 긴급한 치료를 받는 중에도 멀쩡했다. 차를 들이받은 직후에 수 미터를 튕겨 날아갔고 오른쪽 다리가 아스팔트 도로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음에도 일어서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함께 길을 건너려 기다리던 두 살 터울 형들의 파랗게 뜬 얼굴에 어떻게든 괜찮다는 신호를 주고 싶어서였을까. 도로변에서 포도와 복숭아 따위를 팔던 어른들이 뛰쳐나와 제 일인 것처럼 나의 응급처치에 힘써준 장면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들과, 나를 들이받았던 중년의 남자에게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하더랬다. 죄송하긴 네가 왜 죄송하니, 이 어린 것이. 식염수를 통으로 들이붓던 구급대원들 사이로 발을 구르던 남자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가끔 그때의 어린 것이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의 나보다 퍽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나는 다른 이의 마음 따위는 나의 것보다 훨씬 뒷전이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든 일들을 자행하며 스스로와 합의하고 자기방어에 전념한다.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라며 오랜 사고 끝에 선택한 것들이 사실은 가장 두지 말아야 할 최악의 수일 수 있다는 것. 장고 끝엔 항상 악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들을 간과한 채로.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정신은 아홉 살 코흘리개의 그것보다 훨씬 어리석고 유약하다. 쓸모없고 고약하다. 

  그 사고는 나의 유년기를 괴롭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후유증을 남기며 내 여분의 인생 그 모든 순간에 관여할 것을 예고했다. 오른쪽 다리가 반대쪽보다 3센치가량 길어진 것이다. 당시의 병역법 기준으로 양측 다리 길이의 차이가 2센치 이상이면 4급 보충역 처분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것을 선택했고, 통신병 주특기를 부여받았다. 알량한 신념이 부추긴 선택이었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친 나는 내가 옳았음을 매 순간 증명해야 했지만 무선 통신 장비는 과도하게 무거웠다. 게다가 연병장에 다리만한 대말뚝을 박아 넣기 위해 오함마를 사력을 다해 휘둘러야 했다. 다리의 길이가 서로 달라 휘어있던 허리에 충격이 누적됐다. 훈련 중에 허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나는 곧바로 국군병원으로 후송됐고, 그곳에서 한 달간 입원하게 되었다. 

  그곳엔 자대엔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갖는 사유의 시간. 그곳에서 관계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문득 염세적이게 되었다. 허리에 팔뚝만한 주사를 꽂아 넣는 순간과 비록 몸을 온전히 가누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던 마음이 미약한 바람에 그만 요동쳤다. 나의 상황들을 몰랐던 친구의 전화에 울컥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 친구는 술에 취했는지 목소리가 잔뜩 고양돼 있었다. 그 모습 앞에서, 나를 에워싼 관계의 정의 따위를 끄적이는 데에 쓰였던 시간들이 온통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백사장에 나는 한 줌의 모래만큼은 존재할까. 그 길로 여러 관계들에 복잡하게 섞여있던 나를 그만두기로 했다. 연락처를 모두 지웠고 40개가 채 되지 않았다. 

  그 행위 자체를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언제든 나의 자유의지로 누구든 여과할 수 있다는 생각, 나만의 거름망을 손에 쥐었다는 그 생각은 오만함이었다. 그 누구보다 여과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주제에 감히.

 

김호민 (불어불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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