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언니

                                                                            김희준

 

 유채가 필 준비를 마쳤나봐 4월의 바람은 청록이었어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던가 계절의 뼈를 그리는 중이라 했지 옷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 했던 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박음질이 풀릴 때 알았지 실로 재봉된 마음이었다는 걸 의사는 누워 있으라 했지만 애초에 봄은 흐린 날로 머무는 때가 많았지 벚꽃과 유채가 엉킨 들판에 어린 엄마와 어린 언니가 있어 놀이기구가 안개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숨바꼭질을 좋아하던 언니가 이불과 옥상과 돌담 그리고 유채꽃과 산새와 먹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한때 비가 내리고 물의 결대로 살 수 없다면 늙지 않은 그곳으로 가자 소매 안에 훔쳤던 벚나무에 대해 사과하는 밤, 나무의 탯줄이 보고 싶었다 뭉텅이로 발견되는 꽃의 사체를 쥘 때 알았던 거지 비어버린 자궁에 벚꽃이 피고 사라진 언니를 생각했어 비가 호수 속으로 파열하는 밤에 말이야 물 속에 비친 것은 뭐였을까

 언니가 떠난 나라에선 계절의 배를 가른다며? 애비가 누구냐니, 사생하는 문장으로 들어가 봄의 혈색을 가진 나를 만날 거야 떨어지는 비를 타고 소매로 들어간 것이 내 민낯이었는지 알고 싶어

 파문된 비의 언어가 언니에게서 나왔다는 걸 알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올리브 동산에서 만나요.

  김희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의 시인의 말입니다. 학우 여러분들은 각자 상상하는 신비로운 세계가 있으신가요? 환상적이고, 평온함과 아름다움이 가득 찬 공간. 시인은 이 시에서 그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인에게 그 세계는 ‘언니의 나라’ 이고 시인이 꿈꾸는 언어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언니의 나라에서는 이미 떨어진 꽃잎도 시들지 않고 유채가 가득한 들판에는 어린 엄마와 어린 언니의 모습이 그대로입니다. 김희준 시인의 언어는 아주 예민하면서도 봄의 혈색처럼 다정합니다. 저는 시인의 시를 읽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우주를 여행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끝없는 시 라는 우주에 혼자 책을 읽고 있다 해도 서글프거나 외로운 느낌은 없습니다. 시인의 언어가 저와 같이 손을 잡고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김희준 시인의 언어는 유채꽃의 빛깔처럼 따뜻해서 혼자뿐인 우주에 있다 해도 위태롭거나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에게 ‘언니’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시를 통해 드러납니다. ‘박음질이 풀릴 때 알았지 실로 재봉된 마음이었다는 걸 의사는 누워 있으라 했지만 애초에 봄은 흐린 날로 머무는 때가 많았지 벚꽃과 유채가 엉킨 들판에 어린 엄마와 어린 언니가 있어 놀이기구가 안개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숨바꼭질을 좋아하던 언니가 이불과 옥상과 돌담 그리고 유채꽃과 산새와 먹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언니를 봄과 연결시키며 언니의 소중함을 드러냅니다. 또 언니의 나라에서 스물일곱 살의 시인보다 한참 어릴 지도 모르는 언니와 엄마. 그 언니와 엄마의 유년 시절 모습은 벚꽃과 유채의 또렷한 색처럼 영원히 그대로입니다. 가끔 센 바람이 불어와도 벚꽃과 유채꽃의 꺾이지 않는 모습 그대로. 비가 내리는 날이 오거나 삶이 우리를 괴롭힐 때 시인은 언니의 나라에 가자고 합니다. 그 나라에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환한 봄의 혈색만큼이나 따스한 얼굴이 있습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세계,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아는 세계.

  꽃들이 피어나는 밝은 봄, 그러나 흐리고 먹구름이 낀 봄날입니다. 흐린 날이 많았던 봄날에 먹구름 속으로 달려가 사라져 버린 언니. 그 언니는 먹구름을 타고 아름다운 세계를 떠나버렸습니다. 하지만 파문된 비의 언어가 언니에서 나왔다면, 시인은 언니를 언젠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언니의 나라, 올리브 동산에서.

  2020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 버린 김희준 시인과 아주 먼 미래에 같이 만날 올리브 동산의 언어를 떠올리면서 친애하는 언니에게, 김희준 시인에게.

박시현 (국어국문학·4)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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