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을 사려면 기억해야 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그가 좋아하는 얼그레이 케이크를 사서 건네는 것은 마음을 전하는 지름길이다. 단축키를 외우기 위해 한동안 왼손을 허둥거려야 하는 것처럼, 다정하는 일은 마음에 인이 박이는 행위이다. 그리고 말썽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습관을 형성할 때가 아니라 고쳐야 할 때.

  너와 나는 너무 달라서 문제라는 말에 내가 공감하는 방식은 피그마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알트와 컨트롤을 분간할 수 없게 될 때, 내 새끼손가락이 누르는 키가 내 의지를 벗어날 때, 상대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나는 익사하고 있는데 너는 물을 설명하고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으리라는 강한 예감이 들 때. 그런 순간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앞의 표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얼그레이를 찾는 일은 재미있다.

  누군가를 더 알고 싶다는 욕망은 낮에 생긴다. 햇빛 아래서 동류를 알아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약속 시간에는 몇 분 일찍 도착하는지, 혹은 몇 분 늦는지. 언제 쓴웃음을 짓고 언제 진심으로 웃는지. 감사와 사과는 어떤 방식으로 전하는지. 그런 지표 속에서 격식 차려 서로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그림자에 있는 법이다. 대낮의 광장에서는 말할 수 없는 속마음을 기어코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섞어 놓은 소주와 맥주처럼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친교에 정답은 없지만 편법은 있다. 가령 밤에 거는 전화는 마법의 단축키와도 같은 것이다. 컨트롤 에스(Ctrl+s). 문장으로 풀자면 딱 한 마디. “산책할래?”

  술을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둘 다 새벽의 옥상에서는 속절없이 소회를 풀어놓게 된다. 밤공기는 마취약처럼 시간을 마비시키고 그 틈을 타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은 불러낸 이의 의무다. 관계맺기의 핵심은 심란함을 남기는 것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원리는 지나가는 밤이 아쉬워지게 하고, 데려다 주겠다는 말도 데려다 달라는 말도 선뜻 꺼내게 만든다.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지, 그리고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이상한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려면 행간마다 숨기는 말이 많아야 하는데 나는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 어떤 말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내보이는 사람이지만 그것이 내가 어떠한 비밀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애초부터 비밀로 남고 싶었던 비밀이 있는가. 모든 비밀은 타의성을 가진다. 세상으로 터져 나올 일촉즉발의 상황을 기다릴 뿐이다.

  해가 떨어진 후의 모습을 아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연인이 될 수도. 혹은 동료가 될 수도. 서로만 아는 비밀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선택지가 있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네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일이 늘 성립할 수는 없기에 모든 오해도 생기는 것일 테다. 기적을 바라는 절박함은 진실을 가린다. 우정이나, 사랑, 존경과 혐오라는 이름으로. 그러니 비밀은 도저히 오독할 수 없는 마음을 받았을 때에 비로소 터져 나온다. 우연히 받은 시향지의 얼그레이 향에서 하필 나를 떠올리는 사람으로, 혹은 이번 블로그 포스팅에 내 이야기가 있을까 굳이 읽어 보는 의지 같은 모습으로 마음은 찾아온다. 어떤 호감은 그런 식으로 기억된다.

김현진 (디자인창의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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