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칼럼

  내가 속했던 면접 스터디 그룹은 8명 중 3명이 C 대기업의 최종 면접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모였다가 각자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다시 밤 8시부터 모여 연습한 덕인지 우리 그룹은 서로를 알게 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스스럼없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졌다. “당신의 한국사 지식을 C사에서 일하는데 어떻게 활용하시겠습니까” 같은 당황스러운 예상 질문에 꼿꼿한 자세로 순발력과 민첩성을 발휘하여 답한 우리는 긴장이 탁 풀어진 채 늦은 밤 강의실 의자에 널부러져 있었다. “근데 취업은 XX(남성기)로 하는 거래.” 세 살 많은 남자 선배의 목소리에 후배들 미간이 꼿꼿하다 못해 찌그러졌다. 적나라한 표현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이 몇 년도인데 그런 말이 어딨어요, 우리 할머니 세대도 아니고. 찝찝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넘겼던 이야기는 몇 해 지나 국민은행의 인사 담당자들이 감옥에 가는 것으로 사실임이 확인됐다. 분노한 사람들은 해당 회사의 카드를 자르고 계좌를 해지했지만 2023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검찰은 신한카드가 신입 사원 평가 기준에 따라 ‘실력대로’ 직원을 뽑은 것이 아니라 남성 지원자의 점수를 임의로 올려 여성 지원자 92명을 부당하게 탈락하게 했다고 보고 임원과 회사 법인을 공판에 넘겼다. 부당하게 등수를 앞지르게 된 92명 이상으로 ‘노력’했을 92명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는 기업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기에 일만 잘하면 사람 아니라 원숭이라도 차별하지 않고 데려와 고용할 거라고 주장한다. 현실에 일 잘하는 원숭이가 고용됐다는 기록은 없지만 하나은행과 서울메트로가 당사가 제시한 기준에 철저히 부합하는 여성 지원자를 고의로 탈락시켰다는 사실은 남아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 여성 청년의 자살률 급상승의 이유로 “(한국) 여성에 대한 모순된 역할 기대”를 꼽아 보도했다. 모순된 역할은 다양하게 거론될 수 있겠지만, 채용 불평등 사태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똑똑해도 채용은 되지 않는 상태’인 걸까 싶다.

  여성들은 ‘여성 할당제라는 제도가 있는데도 취업 못하는 여성을 꾸지람하는 사회’에서 갑갑함을 느낀다. 취업을 위해 유학은 필수,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가야 하는 것이지만 해외 경험을 쌓은 여자는 신부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수사가 만연한 사회다. 이러한 가운데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의 지원 가능 나이 제한이 만 35세로 상향되자 주변의 30대들이 동요했다. 중이 되라기에 머리를 깎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절을 떠날까 고민하는 것이다.

  떠난 곳이 따뜻하기만 한 낙원일 리 만무하다. 그곳에서는 2등 시민도 아닌 3등 시민으로 살아야 함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떠남에 대한 이야기가 떠돈다. 시장경쟁체제에서는 능력을 키우고 기술을 갖추는 것이 제1의 원칙이라 배웠다. 여기는 시장경쟁체제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곳이 아님을, 혹은 시장경쟁체제와 동시에 다른 기제가 작동함을 제 몸 부딪혀 배운 이들이 깎이고 지친 몸을 가지고 업계를, 나라를, 세상을 뜬다. 능력주의가 룰인 척하는 심판의 뒷짐 진 손엔 다른 정답이 쥐어져 있는지도 모르고 공정한 게임에서 자신의 기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좌절과 포기가 안개처럼 깔린 곳에서 흔들리는 동시대의 동료들이 보인다.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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