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사설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우리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자유란 것은 기본적으로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자유는 양심이나 사상의 자유 그리고 이동의 자유를 의미하는 개인적 자유로부터, 영적 구원을 의미하거나 숭배의 자유를 의미하는 종교적 자유, 정부의 침해에 맞서 개인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시민적 자유, 집회와 결사 및 언론의 자유 그리고 국가적 의사 결정에 참여할 자유 같은 정치적 자유까지 방대한 의미를 포괄한다. 이러한 자유는 헌법상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기도 해서 교육을 받을 권리(대한민국헌법 제31조)와 근로의 권리(제32조), 근로자 단결권(제33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환경권(제35조)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지고의 가치로서 절대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역사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그렇기 에 자유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많이 달랐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자유의 본질은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었던 근대 세계의 자유와는 달리 공공생활에 대한 참여, 즉 자치(self-government)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18세기에서 19세기 중반 대서양 세계에서 자유는 자치나 면세처럼 특정 집단에게 수여되는 공식적인 특권을 의미하기도 했고 백인같은 특정한 인종적 집단에게 부여되는 약탈적 특권을 의미하기도 했다. 다른 측면에서 자유는 경제적 독립을 전제로 하는 자립이나 독립성을 의미하면서 자립하지 못하는 개인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양산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당대의 혁명적 세력들은 특권이 아닌 보편적 권리로서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경제적 평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유는 제약 없는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이기도 했다.

  그럼 다시 한 번 묻고자 한다. 우리는 진정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꿈을 잃어버리고 이상을 비웃는 이 시대에 누군가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며 자유를 읊어대고 있다면 그는 거짓선동가이고 약탈적 특권세력이며 새로운 시대정신의 탄생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임에 틀림없다. 자유가 누군가에게 다시 특권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의미 없는 몸짓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우겨대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는 무지몽매한 노예에 다름 아니다.

  19세기 전반기 미국의 노예제폐지운동은 단순히 노예제를 폐지하고 노예를 해방시키자는 운동이 아니었다. 노예제폐지운동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면서 당대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혁명적 의식운동이었고 부패하고 부조리한 당대 사회를 근본부터 뒤엎어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하는 급진적 사회개혁운동이었다. 노예제폐지운동가들은 자유의 상실에 대해 분노하던 혁명가들이었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선각자들이었다. 체념이나 무기력함, 패배의식이나 굴종의식, 비겁함이나 위선은 결코 이들이 가지고 있던 덕목이 아니었다. 우리 젊은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노예제폐지론자들의 역사적 자취를 조심스럽게 더듬어보자. 단순히 흑인노예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자유를 되찾고자 했던 노예제폐지론자들은 ‘해방’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해방의 정치문화’를 통해 일궈낸 실천적인 운동가들이었다. 또한 이들은 동시대인들에게 자유에 대한 각성을 통해 절박한 민주주의적 신념을 호소한 체제 개혁가들이었다. 자유가 퇴색해 가는 이 시대에 우리 젊은이들이 이끌어나가야 할 또 다른 노예제폐지운동이 필요하다면 나만의 착각이요 과대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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