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밀물썰물

최지수 기자,  일어일문학과
최지수 기자, 일어일문학과

  “물을 사 먹어? 약수터 가요”, “여름 휴가? 로드뷰로 가세요”, “퍼스널컬러 진단이 왜 필요한가요? 색종이를 얼굴 옆에 대보세요”  

  위의 문구들은 모두 ‘거지방’에서 나온 말들이다. 거지방이란 함께 생활비를 절약해보자는 취지에서 생겨난 오픈채팅방으로, 최근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 속에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불붙듯 번지고 있다. 현재 거지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은 100개 이상이다. 

  사람들은 거지방에서 스스로의 지출 내역을 낱낱이 공유하고, 서로의 소비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한다. 거지방에서는 커피 한 잔부터 OTT 서비스 구독료, 월세까지 누군가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또한, 오픈채팅방이 가진 익명성에 기대 자신의 경제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며 해결책이나 위안을 얻어간다. 서로의 자세한 인적사항은 모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냥 돈을 아끼라고만 하는 건 아니다. 부모님에게 쓰는 돈, 인터넷 강의 구매와 같은 자기계발비는 융통성 있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거지방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 절약 노하우를 알게 되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절약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다는 순기능도 있다. 이렇듯 거지방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자, 연령이나 성별 등 나름의 참여 기준을 갖는 대화방도 속속히 등장하고 있다. 

  거지방을 만들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2030세대라는 건 그만큼 청년층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났다는 걸 의미한다. 20대의 경우 대부분 수익활동이 없는 학생과 취업준비생이므로 지출을 줄임으로써 물가 상승에 대처하고 있다. 내일을 위한 저축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절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거지방 홍보를 위한 해시태그에서도 #백수 #학생거지 #하루살이 등이 많이 사용되는 걸 볼 수 있다.  

  이제 청년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거지’라고 칭하며 거지방에 들어가 허리띠를 졸라맨다. 하지만 청년들이 겪는 경제적 부담은 거지방을 들어간다고 해서, 온종일 1원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트렌드 모니터 2023’의 저자인 윤덕환 박사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거지방을 “개인의 취향을 각자의 라이브 스타일로 인정하고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성향을 가진 세대의 특성”이라 분석했다. 

  그러나 “주로 남을 공격하고 무시할 때 사용했던 거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수저 계급론’의 ‘흙수저’처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워진 사회 구조를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간에선 이러한 현상을 ‘새로운 놀이문화’라 표현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세상은 거지방을 두고 2030세대가 세상 풍파를 해학적으로 풀어냈다고 주목한다. 절약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거지’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사회의 구조적 결함을 말하지 않기에, 누구도 청년들이 거지방에 들어가는 진짜 이유를 모른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분께 묻는다. 정말 청춘은 아파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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