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감상하는 대학원생

  꽃이 말랐다. 바싹.

  어렸을 땐 생화를 사는 게 이해가지 않았다. 가성비도 나쁘고 영원하지 않았다. 상실에 대한 저어감이기도 하겠지만, 꽃을 잘 몰랐다. 생화와 조화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월초에 사둔 꽃다발이 있었다. 화병에 뒀다, 물을 갈았다가, 줄기 끝을 사선으로 잘라주었다가. 하늘을 향하던 꽃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화병에서 꺼냈다. 보기 좋게 줄기끼리 묶어주었다. 바람이 잘 드는 곳에 거꾸로 매달아 두 주를 바싹 말렸다. 목이 꺾이지 않았다. 마지막 수분은 꽃잎에서 증발했을 것이다.

  한 사연에서 끝은 어디로 짚어야 할까. 시들어버릴 것이 확실한 생화가 하루, 이틀 세상에서 향을 피우는 시점. 그 끝은 어디로 삼아야 할까. 꽃이 피는 시기가 식물의 관점에서 반복되는 행사란 것을 감안할 때,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을 어떤 의미로 삼아야 할까. 어디든 표지 삼지 않으면 그 장면을 계속해서 마음속에 반복하게 된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을 만큼 정서가 메마르기도”(김아라, 2022)한다는 대목이 생각났다. 만성화된 우울의 전형적인 모습 중에는 무기력과 건조함이 있다. 그래서 한 시인은 “돌아누운 나 대신 / 울어주었던 밤들아”(최영미, 「포로」 中)라며 드러나지 않지만 항존할 것만 같은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상실에 머무르면 우울은 지속된다. 지금 여기가 아닌 과거만 떠올리게 되면, 살아가는데 초점을 맞출 수 없다. 흘러가면서, 흘러가간 곳만 뒤돌아보며 지낼 순 없는 것처럼.

  실습 중인 고교의 담당 학급에서 한 명이 자퇴했다. 담임 선생님은 울음을 참으시며, 그 학생이 학교 밖으로 떠나갔지만 그래도 우리반임을 강조해달라 당부하셨다. 계속 응원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동의했다. 조례에서 아이들에게 일련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어, 사람을 만나는 건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인데, 이 마음의 일부가 소실되었을 때 생기는 느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도록 과제를 주었다.

  아이들은 무던했다. 표현은 적었다. 자퇴생은 전날 해질녘 교실로 와 짐을 쌌었다. 칠판에 급우를 위한 마지막 인사를 적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이었다. 아이들은 지우지 않길 바랐지만, 그렇다고 애걸복걸하지도 않았다. 자퇴생은 결석이 많았지만, 출석 땐 적극적으로 생활했다. 전날, 자기자리 책상을 교실 뒤편으로 정리해두던 모습이 떠올랐다. 출석하는 날마다 내게, 과거와 미래 이야기를 떨리고 조급한 목소리로 쏟아내던 장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반에서 한 부류의 학생들은 자기 밖의 존재에 왜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나, 더 크게 좋은 감정과 기억은 적을 수 있음을 이야기 해주었다. 다른 부류의 학생들은 다른 존재로부터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다고 하소연 하였다. 그 순간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되, 그 아픔에만 갇히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실습이 마무리 돼 가는 시점에서 글을 쓴다. 무더움이 벌써 체감되고 있다. 많은 것이 다채롭게 끓어오를 것만 같다. 조화와 생화를 구분은 먼지의 유무로 시작했다. 먼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착시나 합리화가 아니길 빈다. 기억은 매번 말썽이고, 말린꽃은 그 찰나를 오래토록 간직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윤동주, 「서시」 中)한다는 말은 사회적 윤리지만, 개인에겐 비애로 느껴지는 시점이다.

최동호 (상담교육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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