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매체에서 ‘성심당’의 이름을 듣는 일이 잦아졌다. 대전의 대표기업 중 하나가 된 성심당은 2022년 5월경 본점 근방에 복합문화공간인 ‘성심당 문화원’을 열었고 그 건물의 맞은편에는 서점 ‘다다르다’가 위치해 있다. 이 서점은 도서를 판매하면서 독서 모임과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진행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친구와 함께 간 ‘다다르다’에서 서점원에게 몇 권의 책을 추천받은 후 고민 후에 고르게 되었다.

  책의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로, 처음 읽었을 때는 책 표지의 색감과 함께 일상적인 이야기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온오프라인의 서점들은 이 책을 ‘교양과학’, ‘생물학’, ‘과학에세이’ 정도로 분류하고 있었다. 책 안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먼저 작가가 매력을 느낀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의 삶과 학술적 족적,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조던의 내면을 묘사한다. 또한 작가 자신의 삶을 서술하고 조던의 삶을 엿보며 자신이 깨닫게 된 사실들을 말해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저명한 어류학자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했다. 그는 동료들과 수많은 어류를 발견해 이름 붙이고, 분류했다. 그러한 분류 작업은 조던의 스승인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에 따르면,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아가시는 자연이 신의 질서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자연을 분류하는 것은 신의 질서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활동(47쪽)”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야기는 생명의 나무를 잔가지부터 더듬어가듯 진행된다.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은 갈림길에서 만나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룬다. 조던은 이후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스승 아가시와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되고, 그의 분류 작업이 자연재해로 또는 다른 사람들의 권력으로 위협을 받고 무너질 때마다 끈질기게 계속한다. 작가는 그의 삶을 따라가며 조던의 삶 속에서 ‘너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에 반박할 정당한 문장을 찾고 싶어 하고, 삶의 중요성에 대해 고민한다.

  이후 조던은 우생학에 몰두하여 ‘부적합’한 사회구성원들의 유전자를 후대로 남기지 않기 위한 ‘불임화법’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게 된다. 생물학적 분류로 신의 질서를, 다윈의 진화론에서 유전적 중요성을 얻게 된 그는 자연에 “객관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신성한 계층구조(203쪽)”인 ‘사다리’가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정작 다윈은 진화론에서 종의 보존에 유전적 풀의 다양성이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조던의 믿음은 그 말을 비껴간다.

  여기서 조던과 작가는 만난다. 조던이 뛰어난 과학자였음에도 타당하지 못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을 작가는 그가 ‘사다리’에서 작가의 화두인 ‘삶의 중요성’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작가는 불임화가 진행되었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두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들이 사회로부터 ‘부적합’판정을 받았음에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한다. 사람들과의 ‘그물망’이 그들에게 삶의 중요성을 주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아무 것도 아닌 삶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구원’이라 칭한다.

  그리고 이후 계속된 과학적 발견과 기술의 발전으로 하나의 사실이 추가된다. 바로 어류와 그것의 분류의 일생을 바쳤던, 분류의 논리로 사회를 바라보았던 조던의 어류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적 진실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의 맥락이 그것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책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다. 단지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처럼, 직접 책을 읽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최수이 (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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