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봄 잡아라
김혜순
봄이 엄마를 데려간다
나는 여기 있는데
봄이 엄마를 데리고 간다
봄이 오면 가만히 서 있던 나무들에게도 이름이 생긴다
꽃이 피면 그 나무의 이름을 불러준다...
엄마의 소녀 적 소녀들은 쌍쌍으로 찻집에 들어가고
애도는 죽음보다 먼저 태어나
꽃 피는 대궐의 문을 여는데
봄은 죽음의 계절
흰 눈 위의 흰곰을 병 속에 밀봉하는 계절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게 있다
봄이 꽃들로 만든 포대기처럼 엄마를 데려간다
저 봄 잡아라
나는 눈을 가린 사람처럼 두 손을 휘젓는다
...
꽃 피면 안 돼
그 누구도 안 돼
주문을 외운다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중
떨어져 얼룩진 이스라지 꽃잎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밤의 꽃잎들은 낮과는 다르게 하얗게 빛났고, 땅 위에서 빛나는 꽃잎들이 슬프고 또 아름다워서 봄밤을 묶어 두고 싶었습니다. 올해는 꽃이 일찍 피고 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봄이 더 짧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이 시도 시간을 묶어두고 싶은 화자의 이야기입니다.
시의 화자는 큰 상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나, 그리고 죽음과 가까워지며 자꾸만 사라지려는 엄마. 김혜순 시인은 봄과 엄마의 죽음을 연결시켜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꽃이 핀 나무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고 엄마의 소녀 적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엄마를 보면 봄의 시간을 멈추고 싶어집니다. 꽃들로 만든 포대기에 싸여 아기로 다시 돌아가려는, 작아지고 아프고 소멸하려는 엄마. 새로 꽃이 핀 나무에는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데 엄마의 이름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봄은 죽음의 계절. 화자에게 봄은 옅어져가는 생명의 목소리가 슬프기만 합니다.
영영 가버린 봄처럼 엄마도 붙잡을 수 없었던 것인가요. 꽃이 피지 말라며 주문을 외우는 화자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봄을 거스르고 싶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이스라지 꽃잎을 보면서 밤을 멈추어 두고 싶던 바로 그 봄. 어느 형태의 죽음이든 그것은 잔인하고 낯설게 느껴지죠. 그러나 이스라지 꽃과 이른 이별을 하고 돌아서는 나무의 가지에는 초록 손들이 돋아났을 겁니다. 화자가 엄마를 보내는 두 손에도 초록 잎들이 생겨나고 그 잎들이 자라나 초여름까지 돋아나길. 이름이 생긴 나무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길. 흰 눈이 녹아도 흰 곰은 여전히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걸 기억하기를.
박시현 (국어국문학·4) @garnetstar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