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최수아 기자,  언론정보학과
최수아 기자, 언론정보학과

  지난 3월 6일,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 대한 대안을 발표했다. 해당 대안은 일본 전범 기업 대신 한국 국내 기업이 배상금을 대납하는 것으로,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이다. 

  그동안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에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이 먼저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체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한일 관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취지로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제3자 변제안이 발표된 직후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비판과 반발이 쏟아졌다.  

  제3자 변제안의 큰 문제점은 실질적인 가해 기업 대신 제3자인 국내 기업의 배상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배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직접 사죄를 요구하며 일본 전범 기업에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바 있다. 지난해 7월까지 한국 법원에선 70건에 달하는 소송이 있었으며, 원고는 총 1,139명이었다.

  민법 469조 1항에 따르면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으나, 피해자가 허용하지 않는다면 변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3자 변제안 역시 피해자들이 변제를 거부하면 배상이 이뤄질 수 없다. 2018년 일본제철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최종 승소한 원고 양금덕 씨와 김성주 씨는 이미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또한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은 2019년 대법원 최종 판결에 위배된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2012년 대법원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의 불법성에 기반해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어 피고 기업이 재상고를 했으나 2018년 재상고심에서도 대법원은 해당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즉 제3자 변제안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게 직접 배상받을 수 있도록 결정한 대법원의 판결과 어긋난다. 나아가 행정부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을 훼손한다. 

  이렇듯 제3자 변제안은 다양한 문제점으로 인해 발표와 동시에 국내의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승소한 피해자 15명 중 5명은 변제안이 통과되면 배상을 받게 되는 당사자임에도 변제안을 반대했다. 우리 학교 교수 135명도 3월 30일 ‘매국적 일제징용 배상안 규탄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에 해당 변제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3월 16일 대통령실은 제3자 변제안에 일본의 직접적인 사과가 없다는 지적에 “일본에게 사과를 한 번 더 받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더 이상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에둘러 밝혔다.  

  한편 일본에서도 제3자 변제안에 대한 반응은 미묘하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화해 제스쳐에 안심하는 의견도 있지만, 한일 청구권협정에 기반해 국가와 개인 차원을 막론하고 일본의 배상 책임조차 부정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의 불법성 또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31일 UN의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에서 당시 한국 노동자들은 자유의사 혹은 징발을 통해 노동했으며 이는 “국제 노동협약에 나오는 강제노동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일 양국의 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교류 활성화와 안보 강화 등 상호에게 이로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간접 배상’을 납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미래지향적 결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도 동의하지 않고 가해자도 참여하지 않은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없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