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으로 붐비던 노량진 공시촌,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 문화일보 제공
공시생으로 붐비던 노량진 공시촌,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 문화일보 제공

  공무원 시험(이하 공시)을 준비하는 공시 준비생(이하 공시생)으로 붐볐던 서울 노량진의 거리가 한산해졌다. 노량진에서 많은 공시생의 끼니였던 ‘컵밥’을 10년 동안 판매해온 한 상인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2021년부터 공시생이 확연하게 줄어든 것이 체감된다”며 이로 인한 매출 감소에 대해 한탄하기도 했다. 이렇듯 공시생의 ‘성지’였던 노량진의 상권 침체는 공시 경쟁률의 하락을 방증한다.

2017년 9급 공채 필기시험 합격자들이 면접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서울경제 제공
2017년 9급 공채 필기시험 합격자들이 면접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서울경제 제공

  한때 꿈의 직장이었던 공무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시는 역대 지원자 수를 매년 갱신했다. 동시에 공시생이 매해 누적되면서 ‘공무원 쏠림 현상’은 점차 심화됐다. 구인·구직 플랫폼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몬이 2019년 대학생과 당해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 1,022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공시 준비 현황’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4.7%가 ‘현재 공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학생과 취준생 4명 중 1명꼴로 공시를 준비한 셈이다. 그렇다면 과거 청년들이 이렇게 공무원을 선호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 안정성 

  공무원은 청년들에게 소위 ‘꿈의 직장’이라 불렸다. 사람들은 낮은 업무 강도와 높은 연봉, 사내 복지와 안정된 정년 등을 보장하는 회사를 ‘꿈의 직장’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공무원이 꿈의 직장으로 불렸던 가장 큰 이유는 직업의 안정성 때문이다. 공무원은 정년 보장과 연금 제도를 통한 직업 안정성으로 젊은이들에게 주목받는 직업 중 하나였다. 2018년 잡코리아가 2030세대 취준생 및 직장인 2,858명을 대상으로 공시를 준비하는 이유를 복수 응답으로 질문한 결과,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가 78.2%로 가장 많았고, ‘노후 연금을 받기 위해’가 41.5%로 뒤를 이었다.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때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부터이다. IMF 외환위기의 발생으로 많은 사기업의 직장인들이 직장을 잃고,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공무원의 인기가 높아졌다.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제도를 도입하는 상황 속에서도 공무원만큼은 안정된 정년을 보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무원에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97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이하 공채시험)의 경쟁률은 48대1이었지만,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당시에는 80대1을 기록했다. 

  - 공정성 

  공무원 채용 방식의 공정성도 공시의 인기 요인 중 하나이다. 공무원 공채시험은 지원자의 학력과 경력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이 취준생 사이에서 공정한 채용 시험으로 인식돼 인기가 많았다.

  반면, 보통의 취업 시장은 경력이 없거나 부족한 청년을 채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2015년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당해 1분기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채용공고 83만 752건을 분석한 결과, 신입만 채용한 공고는 5.5%에 불과했지만 경력직만 채용한 공고는 25.4%로 5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은 경력직에 비해 직장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 채용 시장에서 경쟁력이 밀릴 수밖에 없다.

  취준생들의 경쟁 상대는 경력직뿐만이 아니다. 같은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취업 경쟁은 치열하다. 취준생들은 자격증 취득이나 대외활동과 같은 취업 자격 요건, 일명 ‘스펙 쌓기’에 열중한다. 다수의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하는 상황 속에서 취준생 대부분에게 직무와 관련된 스펙을 쌓는 것이 중요해졌다. 2017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준생 8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취준생 78%가 “스펙 한 줄이라도 더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취업 시장의 특성으로 인해 많은 취준생은 경력을 고려하지 않는 공시를 선택하게 됐다.

국가직 7·9급 공무원 공채시험 추이, 인포/ 송민경 기자
국가직 7·9급 공무원 공채시험 추이, 인포/ 송민경 기자

  공무원에 등 돌린 청년들 

  과거 청년들에게 공무원은 꿈의 직장이었지만, 공무원의 인기는 이제 옛말이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치솟는 물가 상승률로 인해 경제는 여전히 어렵지만, 청년들은 더 이상 무조건 공무원을 선택하지 않는다. 청년들 사이에서 공무원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 시험 경쟁률 하락

  최근 공시의 경쟁률은 계속해서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해 3월 인사혁신처(이하 인사처)에 따르면 2022년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의 평균 경쟁률은 2021년 35대1보다 하락한 29.2대1을 기록했다. 평균 경쟁률이 30대1 이하로 낮아진 건 1992년(19.3대1) 이후로 처음이다. 최근 4년간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의 경쟁률을 살펴보면 ▲2018년 41대1 ▲2020년 37.2대1 ▲2022년에는 29.2대1에 그쳤다. 

  7급 국가공무원 역시 42.7대1의 경쟁률을 보이며 43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7급 경쟁률은 2013년 113.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정점을 찍은 이후 2021년(47.8대1)에 잠시 상승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인다. 이 같은 공시의 경쟁률 수치 하락은 공무원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 조기 퇴직 비율 증가

  경쟁률 하락과는 반대로 2030세대 공무원의 조기 퇴직 비율은 상승하고 있다. 인사처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재직 기간이 5년 미만인 공무원 퇴직자는 1만 693명으로, 이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81%에 달한다. 이처럼 힘든 수험 생활을 거쳐 공시에 합격했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데 들인 노력만큼 직장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해 공무원 사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경상북도 한 시군에서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으로 5년 동안 근무했던 A씨는 K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직 공무원 선발 시험에 1년을 매달려 합격했지만 과중한 업무량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퇴사 이유를 밝혔다. 덧붙여 “함께 시험을 붙었던 20명의 동기 중 지금 남아있는 동기는 4~5명 정도”라고 답했다. A씨가 근무했던 5년 사이에 대부분의 동기가 조기 퇴직을 한 것이다.  

  이처럼 2030세대 공무원의 조기 퇴직률이 상승하면서 발생한 인력 손실로 인해 숙련도를 갖춘 공무원 확충에 빨간불이 켜졌다.

  공무원 인기 하락의 원인

  - 만족스럽지 못한 연봉 

  2030세대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무원의 인기 하락 현상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2021년 2030세대 1,865명을 대상으로 직장 선택 기준을 질문한 결과 연봉(33.8%)이 1순위로 꼽힌 바 있다. 요즘 시대 청년들은 직장을 선택할 때 안정성보다 높은 연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는 공무원의 월급이 박봉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작년 8월에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2030청년위원회 소속 청년 조합원 30여 명이 정부의 ‘5급 이하 공무원 2023년도 임금 1.7% 인상 결정’에 시위하며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임금 상승률에 대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우리 학교 도시·자치융합학과 김종성 교수는 공무원의 처우에 대해 “과거에도 공무원의 보수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복지혜택이 마련돼 있었기 때문에 민간기업에 비해 근무 여건이 괜찮은 편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회발전과 더불어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민간기업의 복지혜택도 늘어감에 따라 상대적으로 공무원의 처우가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높은 진입장벽 

  과거에 비해 높아진 공시 진입장벽도 공무원 인기 하락의 원인 중 하나다. 시험과목의 개편으로 인해 공시의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공무원 준비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3년부터 고졸자의 공직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9급 공채시험에 ▲사회 ▲수학 ▲과학의 고교선택과목을 도입했다. 그동안 9급 공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직렬별 전문과목 2개와 고교선택과목 3개 가운데 2개를 선택해서 응시했다. 하지만 제도적 취지와는 달리 전문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에 응시해 합격하는 신규 공무원의 비율이 높아져 행정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된다는 우려가 계속되면서 2022년에 고교선택과목이 폐지됐다.  

  이러한 시험과목 개편으로 인해 과거처럼 고교선택과목을 응시하며 여러 직렬에 지원하는 것이 어려워져 연습 삼아 시험을 보던 허수가 사라졌다는 주장이 있다. 교육기업 에스티유니타스 유성룡 교육연구소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직렬별로 필수로 응시해야 하는 2개의 전공과목을 대비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9급 공무원 경쟁률 하락에 적지 않게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답했다.

  - 관료적 조직 문화

  2030세대 사이에서 공직 사회의 관료적인 조직 문화도 공무원의 직업적 매력을 떨어뜨렸다. 국가직 9급 일반행정직에 합격 후 임용유예 중인 우리 학교 B 학우는 공무원 인기 하락에 대해 “여러 대기업이나 신생 기업의 경우 과거의 경직된 조직 문화에서 탈피해 수평적인 조직 문화로 발전했지만,  공직 사회는 아직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기에는 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적인 IT 기업 구글은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와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해 취준생들에게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 인기가 많다. 2022년 사람인이 성인 남녀 2,513명을 대상으로 ‘입사하고 싶은 외국계 기업’을 조사한 결과, 구글코리아(24.1%)가 1위로 꼽혔다. 우리나라 대기업 삼성도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위해 2021년 인사제도 혁신 중 하나로 연공 서열 타파를 제시하기도 했다. 

  청년들의 직업 인식 변화    

  청년들의 직업 인식 변화 역시 공무원 인기 하락에 한몫했다. 고용의 안정성을 중시했던 이전보다 자신의 역량 강화를 추구하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요즘 2030세대는 직장 이외의 다양한 형태로도 개인의 자아실현을 충족하려 한다. 그들은 직장의 업무와 개인의 삶 사이에 균형을 추구하며, 각종 취미생활과 여가생활을 실천한다.  

  - 워라밸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일과 개인의 생활을 균형 있게 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열풍이 불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 2018’를 통해 2018년에 가장 주목해야 할 유행 키워드로 워라밸을 꼽기도 했다. 과거 청년들 사이에서 공무원은 워라밸이 좋은 직업으로 통했다. 특히, 정시 출퇴근 보장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공무원의 큰 장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의 2030세대는 공무원이 워라밸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은 높은 워라밸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높은 업무 강도와 잦은 야근으로 개인의 여가 시간이 줄어들었다. 2021년 4년간의 지방직 공무원 생활 후 퇴직한 C 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3년 차에는 야근을 정말 많이 했다”며 “야근 수당이 나오긴 하지만 여유로운 저녁 생활을 원하는 동료들은 돈을 이유로 야근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 자아실현

  또한 지금의 2030세대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한 세대이다. 2021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030세대 취준생과 직장인 1,776명을 대상으로 ‘직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를 조사한 결과, '개인의 역량 향상과 발전(자아실현)’이 56.4%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청년들은 직장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젊은 공무원들은 관료적인 공직 사회의 분위기로 인해 자아실현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지방직 8급 교육행정직으로 재직 중인 우리 학교 졸업생 최인성 씨는 “공직 사회에 자리 잡은 연공서열제의 특성상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능동적으로 일을 기획해서 실행하는 주변 친구들의 모습이 더 보람 있어 보여 퇴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직장 생활의 아쉬움을 표했다.

  젊은 인재가 이끄는 사회

  - 정부의 노력 

  공무원의 인기 하락으로 인해 공무원 쏠림 현상이 완화되면서 청년들이 다양한 직무를 선택하는 역동적인 사회로 변화했다는 의견이 있다. 한편, 정부 차원에서는 공무원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공무원의 수준과 경쟁력 저하의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공직 사회에서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공시의 진입장벽을 한층 허물었다. 2022년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공무원임용시험령 개정안에는 7급 이상 공시 응시 가능 연령의 감소(20→18세), 5·7급 공채시험의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성적 인정 기간의 폐지와 5급 공무원 행정고시 선택과목 폐지가 포함돼 있다. 인사처는 “응시 연령을 8급 이하 공무원 공채시험과 동일하게 조정해 직급별 응시연령 차이를 없애고, 능력 중심의 인재를 선발하려는 방안”이라고 개정 목적을 설명했다.

  폐쇄적인 공직 분위기를 유연하게 바꾸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민간 수준의 유연한 인사 시스템과 파격적인 성과주의를 도입해 활력이 넘치는 공직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직 사회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청년들의 직업 선택 자세 

  유능한 인재가 이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청년들 사이에서도 건강한 직업 선택관을 가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청년들은 직업을 선택하기 이전에 우선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김종성 교수는 앞으로 직업 선택 과정에 있어서 “살면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며 “대학교 1~2학년 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자기 적성과 능력을 알아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심사숙고하지 않은 진로 결정은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워도 쉽게 포기하거나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충분한 진로 고민을 권장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는 공직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저출산·고령화, 사회 양극화 심화 등의 사회적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유능한 공직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청년들의 직업 시대상을 반영한 현실적인 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마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진로 고민을 바탕으로 형성된 올바른 공직 가치관을 가진 청년들이 공무원 사회에 진출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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