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부터 언론에 ‘빌라왕’ 사태가 활발하게 보도되기 시작했다. 첫 뉴스는 1,139채의 주택을 소유한 ‘빌라왕’ 김 모 씨가 지난 10월 장기 투숙하던 호텔에서 급사했다는 소식이었다. 갑작스레 임대인이 사망하면서 많은 임차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빌라왕은 숨진 김 모 씨 한 명이 아니다. 몇백 채의 빌라를 소유한 빌라왕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빌라왕의 실체는 공모자들이 모인 조직적 범죄인 경우가 많다. 지난 2월 2일 경찰청은 최근 7개월간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통해 전국에 6,100여채를 보유한 6개 조직의 가담자 350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임대차 계약과 매매 계약을 동시에 맺고, 세입자의 보증금을 가로채 무작정 빌라 수백 채를 사들이는 ‘돌려막기’ 형식으로 사기를 벌였다. 

  부동산 매매업체의 브로커들은 세입자를 속여 시세보다 비싼 전세금을 받아 차익을 챙긴 다음, 빌라왕에게 곧바로 명의를 넘겼다. 빌라왕이 무자본으로 몇백 채의 건물을 사들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명의만 브로커에게 빌려줘 집주인으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은 전세보증금은 빌라왕이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데 사용됐다. 명의자들은 집값이 오른 후 다시 파는 ‘갭투자’를 통해 손해를 메꿀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었지만, 부동산 시장 가격이 폭락하자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그 여파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세입자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이런 전세 보증금 사기 피해는 주로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 2030세대에 집중됐다. 2030세대는 대부분 사회 경험이 적고, 부동산 거래 지식이 부족해 중개인 의존 경향이 큰 만큼 사기에 취약하다. 만 19~33세 이하 무주택 청년이라면 누구나 정부 보증으로 최대 1억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고, 전세 대출 심사 또한 비교적 간단하다는 점 역시 범죄의 좋은 표적이 됐다. 

  지난 2월 2일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확인된 피해자 1,207명 중 절반인 49.9%(602명)이 2030세대였다. 피해주택 유형 중에선 시세를 비교해 확인하기 어려운 빌라가 68.3%(824명)로 가장 많았다. 또한, 전체 피해금액은 2,300억 원이지만 피해자 1인당 피해 금액은 1~2억 원 대가 37.4%(453명)였다. 이처럼 대부분의 피해자는 서민층에 속해 있었다.   

  전문가들은 거래내역이 없는 주택, 주택 거래액보다 전세 보증금 액수가 같거나 많은 주택 등을 조심하고, 집주인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집주인이 갭투자를 벌인 악성 임대인인지 아닌지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예비 임차인들은 지난 달부터 수도권에서 시범적 운영을 시작한 ‘안심전세앱’도 이용할 수 있다. 안심전세앱은 ▲자가진단 기능 ▲주택 시세 ▲집주인 정보 등을 제공해 세입자가 주택 거래 시 위험요소를 쉽게 걸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빌라왕 사태 이후 정부와 경찰의 대응 또한 강경해졌다. 지난 2월 2일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지원 방안’을 발표해 무자본 갭투자를 근절하고 피해자 구제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역시 국민적 우려를 감안해 오는 7월 25일까지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이어나가고, 전세 사기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 사기꾼들이 작정하고 벌이는 조직적 범죄는 개인 차원에서 예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알아야 안 당하는 전세 사기, 예비 임차인들의 세심하고 꼼꼼한 태도가 요구된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