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칼럼

  지금 내 방의 온도는 16도이다. 어제도 그제도 난방을 켜지 않았다. 1월에는 14도로도 살았는데, 지난 주말에 아주 오랜 친구가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기에 보일러를 팽팽 돌렸더니 그나마 아직까지 2도가 올라가 있다. 

  다들 춥지 않냐고 묻지만 두껍게 입으면 그럭저럭 지낼만하다. 원룸인 내 집 1월의 도시가스 난방비는 사만 얼마가 나왔다. 휴. 춥게 지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한 친구는 역시 원룸에 지내는데 난방비가 11만 원 나왔다고 울상이 됐다. 월급이 190만 원인데, 월세가 37만 원 관리비가 3만 원 전기 요금과 수도 요금을 제외하고도 깔고 앉은 집 밑에만 51만 원이 나간단다. 일하러 다니느라 쓰는 교통비가 7만 원, 점심값만 20만 원. 세 끼 먹고 살면 방 세 개인 집은 언제 갖겠냐며 시린 웃음을 지었다.

  미디어에는 요즘도 전기와 도시가스 없는 곳에서 사느라 가스버너에 물을 끓여 집을 데운다는 노부부의 사연이 나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생계를 위해 돈을 벌지만 병원비가 뚝뚝 통장의 숫자를 떼어가고 창고에서 찬물에 머리를 감는단다.

  코로나19 이후 홈리스가 늘었다는 기사도 봤다. 대전역에 매일 가다 보니 겨울이 되어 지하철역에 내려와 있는 남자 홈리스는 얼굴을 외울 정도로 마주친다. 여름에는 바깥 어디서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겨울에는 확실히 바깥보다 지하철 역사가 따뜻하니 들어와 있는 것인데 그래봤자 지하철역도 겉옷 없이는 10분 이상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춥다. 그들은 은박 이불 아래 등을 굽히고 체온으로 점퍼를 데운다.

  누군가는 사지 멀쩡한데 왜 여기서 누워 자냐고 손가락질을 하고 호통을 치며 지나간다. 정말로 그런 일이 하루 한 번은 있다. 내 옆에 있던 사람은 호통치는 사람이 멀리 지나가자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제가 미래에 저 사람처럼 여기서 지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못 하겠어요.”, “우리는 여자잖아요. 여기서 저렇게 자지도 못해요.” 또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나름대로 안정적인 고정수입이 있는 내가 방이 훈훈하도록 두지 않는 것도 내 옆사람이 느끼는 불안과 비슷한 데 뿌리를 둔다. 한 달에 얼마 이상 저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얼기설기 부실한 사회 안전망과 그 아래로 떨어져 불우한 시민들의 모습. 긍정적인 생각으로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고 싶지만 노후 대비에 뼈를 깎으며 당장의 벌이를 끌어 모으는 주변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인간은 8시간 자고 조깅도 하고 밥도 건강하게 해먹어야 행복하다는데 5시간 자며 부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자기계발서와 영상이 머릿속에 맴돈다. 인간적인 삶을 미리 좀 포기하면 50년 뒤 연명하는 때에는 미지근하게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일 테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인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2021년 기준 37.6%다. 65세 이후 37.6% 안에 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청년들은 짠테크, 앱테크 되는 건 다 시도해본다. 그러나 지금 노인의 37.6%라고 젊은 시절 땀 흘려 일하지 않았을 리 없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저출생과 고령화를 겪는 이곳이다. 에코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쯤에는 우리의 정책과 기획이 노인의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나라를 만들어 두었길, 마음속으로 소망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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