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지난해 7월 서울광장에서 축제가 열렸다. 사진/ 동아일보 제공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지난해 7월 서울광장에서 축제가 열렸다. 사진/ 동아일보 제공

  연예인 홍석천이 스스로 성(性)소수자임을 밝힌 지 어느덧 20여 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는 TV나 휴대폰 등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에서 성소수자를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BJ 출신의 트랜스젠더 풍자가 인기를 얻어 공중파에 진출했고, 연애 프로그램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이하 좋알람)에선 여성 참가자 자스민(가명)이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히며 다른 여성 참가자 백장미(가명)에게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는 언제부터, 어떻게 미디어 콘텐츠에 등장해왔을까?  

  ‘LGBTQ’란?

  ‘LGBTQ’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용어로,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으로 인해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자를 의미한다. 다른 성소수자까지 포괄하는 +를 더해 ‘LGBTQ+’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커밍아웃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주변에 공개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차별적인 시선을 염려해 밝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들’의 등장

  - ‘최초’의 등장

  2000년, 연예인 홍석천은 방송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최초의 성소수자 연예인으로 거듭났다. 그의 커밍아웃은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으나 홍석천은 그 뒤로 연예계에서 사실상 퇴출당해 오랜 시간 동안 복귀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 국내 1호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활동을 시작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하리수는 홍석천과 달리 대중의 환대를 받으며 한류스타로 도약했다.

  그러나 이는 트렌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보다 예쁜 여자’ 하리수의 아름다운 외모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게이인 홍석천은 이성애적 사회 규범을 무너뜨리는 존재이므로 대중에게 외면당했다. 또한, 하리수의 인기와는 별개로 당시 사회는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여전했다.  

  - 변화하는 미디어 속 성소수자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는 <왕의 남자(2005)>, <커피프린스 1호점(2007)>, <성균관 스캔들(2010)> 등의 작품에서 ‘여장남자’, ‘남장여자’라는 설정이 등장했다. 특히 <성균관 스캔들>에서 남자 주인공이 상대가 남장여자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사내 녀석인 네가 좋아졌단 말이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사랑이 이성에게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줬다. 다만 해당 작품들은 여장남자, 남장여자라는 요소를 통해 동성애를 연상시킬 뿐, 결국은 본래의 성별을 드러내고 이성 간의 사랑으로 끝난다는 한계를 가진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 <아가씨(2016)>, <윤희에게(2019)> 등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이 점차 등장했다. 그리고 2020년대에 들어서는 훨씬 더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성소수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2022년에는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슈룹>이 각각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의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를 제시했다. 또한, 같은 해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예능인 ‘남의 연애’와 ‘메리퀴어’도 등장했다. 두 프로그램은 가상 인물이 아닌 실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았던 연애 프로그램 ‘좋알람’에서는 성별과 상관 없이 좋아하는 상대에게 알람을 울릴 수 있어, 성소수자 예능이 아님에도 성소수자 출연진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었다.

  ‘우리’는 계속 여기에

  - 내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성소수자가 얼마나 살고 있을까? 현재까지 우리나라 성소수자에 대한 공식 집계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수를 파악하긴 어렵다. 다만,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2020년 미국에서 성인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5.6%가 성소수자라고 답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우리나라 역시 5% 내외로 추정해볼 수 있다.

  지난 2022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성소수자들이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 가시화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실시하는 국가승인통계조사와 관련 법령에 따라 실시되는 각종 실태조사에서 성소수자 관련 항목 신설을 권고했다. 그러나 지난 1월 26일 인권위에 따르면, 해당 권고는 각 정부 부처가 ‘불수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매년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행사에는 다양한 성소수자 단체가 참가하고 있다. 우리 학교 에브리타임 퀴어 게시판이나 오픈채팅방(CNUQ) 등에서도 성소수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게이인 우리 학교 대학원생 A 학우는 “다른 성소수자와 교류하는 사람은 소수”라며 “본인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 ‘보여지는 것’의 중요성

  성소수자가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건 다소 ‘작위적’이거나 ‘스테레오’ 타입일지라도 의미가 있다. ‘보여지는 것’, 즉 ‘가시화’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있는 성소수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좋알람에서 자스민과 백장미의 데이트 장면이나 고백 장면이 방송될 때마다 SNS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며 시청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가시화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없애는 것에 기여함으로써 비(非)성소수자에게 성소수자를 이해할 기회를 부여한다.  

  물론 이제는 가시화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단계를 넘어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가를 고민할 차례다.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개인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표현해야 한다. 레즈비언인 우리 학교 B 학우는 “성소수자의 미디어 진출은 좀 더 많은 이들이 성소수자를 인지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성소수자 콘텐츠 및 미디어가 ‘퀴어물’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분류되고 유머로서 소비되는 부분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성소수자를 비성소수자와는 다른 무언가로 규정짓는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모두’의 대한민국을 위해

  - 2023년, 지금 대한민국은 

  이제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는 현실 속의 성소수자에게는 설 자리를 주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MBC는 성소수자 아이돌 그룹 라이오네시스의 신곡 ‘It’s OK to be me’에 대해 방송 불가 판정을 내렸다. 방송 출연 심의 결과를 안내하는 문자에는 ‘불가 사유-동성애’라는 내용만이 담겨있었다. 이후 해당 사실이 알려지며 성소수자 차별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MBC는 자체적인 재심의 과정을 통해 방송 적합 으로 심의 결과를 정정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해당 곡이 기독교를 폄훼하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여전히 이들의 방송 출연을 반대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없애려는 현상은 방송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같은 달 22일에는 교육부가 국제용어인 ‘성평등’과 ‘성소수자’를 삭제하고 유사한 표현으로 대체한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 발표했다. 이에 대해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1월 25일 “위와 같은 계획이 국제인권규범에 명시된 교육권과 건강권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리나라 정부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활동한 우리 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RAVE(이하 레이브)도 어려움을 겪은 건 마찬가지였다. 레이브 회원이던 A 학우에 따르면, 레이브는 2018년 가동아리 심사 과정에서 등록 조건을 모두 만족했음에도 ‘궁금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 ‘가동아리 의결 자체에 있어 논란이 있을 수 있음’ 등의 사유로 탈락했다.  

  -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누구를 싫어하느냐가 개인의 자유인 것처럼 누구를 좋아하고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느냐는 남에게 평가받을 사안이 아니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은 그저 개인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우리 학교 여성젠더학과 김명주 교수는 이성애 규범은 “정상과 비정상을 자의적으로 가르는 권력관계의 역사적 산물”이라며 “성소수자가 자유롭게 발언하기 위해선 우선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B 학우도 “주변인이 성소수자일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학우들이 많다”며 “성소수자가 별나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답했다. 

  오늘날 미디어 콘텐츠에서의 성소수자 등장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콘텐츠 속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꾸준히 변화해왔다.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변화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는 액정 너머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성소수자를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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