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추운 겨울에 핀 복수초, 그리고 가장 따뜻한 봄날에 죽어가는 존재들.  저는 ‘사랑’ 하면 이러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이번 연재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개인적인 감정인 사랑에 대한 시를 다룹니다. 

  1연에는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오래된 거리는 시인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지는데요, 3연을 먼저 봅시다. 3연에는 너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둘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오래된 관계입니다. ‘오래된 거리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알아온 시간이 오래됨과 동시에 미래로 가는 거리 즉 길이 우리에게 펼쳐져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2연에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여름에 비를 준다는 말은 너의 미래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뜻입니다. 한여름에 손바닥을 두드리는 달콤한 비, 그리고 과거에게 그랬듯이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는다는 화자의 다짐. 

  참 아름다운 사랑 시지만 저는 이 시에서 슬픔의 감정 또한 묻어나온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이 문장을 읽으면서 시의 제목인 ‘청혼’을 같이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아주 오래 머물겠다고 결심할 때 중요한 것은 쓴잔의 슬픔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한 쓴잔, 그 쓴잔에 담긴 슬픔. 그 슬픔은 투명 유리 조각 같습니다. 마시면 나의 목에 상처가 나게 될 날카로운 슬픔을 화자는 너를 위해 마시겠다고 합니다.

  시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결혼을 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거리는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흘러가고 그 거리를 너로 인해 가득 채우게 되겠죠. 한 사람만의 거리였던 것은 결국에 두 사람의 오래된 거리가 될 것입니다.

 

박시현 (국어국문학·4)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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