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기

  때는 약 3개월 전, 여름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한낮의 기온은 30도에 육박하고 가만 있는 것만으로 땀은 주륵주륵 쏟아졌고. 절정을 달리는 불쾌지수 속 저는 미쳐가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안 왔거든요. 시원하게 가고 싶어서 버스를 타려고 한 건데 버스를 타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한다니. 세상은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에 잠겨있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버스가 보였습니다. 드디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저는 한 가지 고민에 빠져버렸습니다. ‘잠깐만 있어봐, 오늘처럼 더운 날에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정말 나 뿐일까? 이거 버스 열리고 보니까 안에 만석인거 아니여?’ 

  저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포개져서 실려갈 바에야 혼자 걸어가는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어느새 버스는 다가왔고 저는 안쪽을 바라봤습니다. 바삐 자리를 훑었지만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고 저는 신이 났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일거라고 여겼는데, 한 발짝 내딛는 것으로 다른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시원한 공기, 텅 빈 버스,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까지. 고즈넉한 분위기 속 저는 어느새 행복을 만끽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가길 원했습니다. 바로 음악입니다.

  이렇게 낭만적인 상황엔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마침 앞을 보니 버스에는 저와 기사님 밖에 없더군요. 그리고 저는 평소 하던대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습니다. 스피커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기 때문에 음량을 높일 수 없습니다. 저는 제 귀에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조절한 후, 가까이 가져다댄 채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어폰을 낀 상태에서 카톡이 오면 소리는 이어폰이 아니라 스피커로 송출된다는 사실. 잘은 모르겠지만 카톡 알림음이 귀로 직접 들어오면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그런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어폰을 쓰지 않았습니다. ‘카톡!’ 알림음은 제 고막에 직접 꽃혔습니다. 예상치 못한 알림에 놀란 탓일까요? ‘흠냐앗!?!’ 이라는 정체불명의 소리를 내며 저는 발사되고 말았습니다. 버스 유리창이 방탄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진짠가 봅니다. 부딪혀보니 생각보다 아프더군요.

  제가 모르는 사이 저를 지켜보고 계시던 승객 분은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온 웃음을 감추느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셨고, 그분이 내뱉은 ‘푸흡’ 소리를 듣고 저는 상념에 잠겼습니다. 오늘도 한 사람을 웃길 수 있어서 뿌듯하다는 의견과 뒤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이런 모자란 행동을 하다니 너무 창피하다라는 생각이 팽팽하게 대립했습니다. 

  근데 또 생각해보니 띠용~하고 튀어나가는게 이건 뭐랄까 완전 토스터기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도 어느새 ‘푸흡’하는 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그렇게 9월의 어느 여름날, 저의 하루는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홍민기 (사회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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