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하는 대학원생

  2021년 여름, 호기롭게 직장을 그만뒀다. 회사마다 혼신을 다했지만, 늘 진정성보다 사리사욕으로 귀결되는 사업을 지켜봤다. 허망했다. 삶에 의미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러면서 생존해나갈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포괄하는 업 중 온전한 직업은 흔치 않았다. 있어도 틈이 매우 좁았다. 그럼에도 투신해보고 싶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족과, 친구와 애인과 경제와……. 그런 것들을 모두 차치하고 선택한 일은 말이다.

  겉으론 위풍당당했지만 속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불안했다. 종일 책을 펴고 공부하는데 진도가 끝나지 않았다. 모르는 건 줄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장이 넘어가듯 하루하루가 빠르게 스쳐가고 곧 전형일정이 엄습해왔다.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목표로 삼았다. 역대 기출 문제를 어렵게 구해 살핀 뒤엔 대안과 또 다른 차선을 모색하는 나를 자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 애써 다독이며, 차선을 합격해두면 괜찮을 것이라 되뇌었다.

  만만하게 본 첫 응시 대학원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면접관의 차가움이 인상 깊었다. 주어진 질문 외엔 어떤 말을 할 기회도 없었다. 두 번째 대학원은 면접 교수님께서 학교 자랑을 오래 하셨다. 면접자에게 하는 두 개의 질문은 의례적으로 느껴졌다. 주어진 개인 응답시간도 매우 짧았다. 이쯤 되자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조급해졌다. 나는 전공 경력도 없고, 전공 자격도 없고, 나이도 많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열정과 간절함이 고작 이 정도였으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수준으로 감히 나아갈 수 없는 길처럼 생각됐다.

  슬펐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선택한 일인데. 너무 보기 좋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아팠다. 그래서 다가올 충남대 시험이 싫었다. 어차피 낙담하고 좌절할 거라면 그 고통 자체를 피하고 싶었다. 그냥 아팠던 셈 칠지, 필기 문제 뭔지만 보고 돌아올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응시를 했다. 다른 대학은 도망쳐도 되지만, 여기만큼은 그리하면 결국 후회할 것 같았다.

  오전에 필기시험을 치고, 오후가 되자 면접에 들어섰다. 두 분의 교수님과 마주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처음 때처럼 권위적이거나 차갑지 않으셨고, 두 번째처럼 의례적이지도 않으셨다. 주어진 질문에 충분히 대답할 시간이 주어졌고, 경청해주셨다. 군더더기 없으셨으나 말씀과 시선이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준비한 것과, 공부한 것, 그리고 이 길을 선택하게 되며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과, 진학 계획 후 해온 일을 펼쳐낼 수 있었다.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이번엔 말할 기회를 받았고 했으니까. 떨어지더라도 그 장면이 너무 소중하고 따뜻했다. 12월, 혼자 많이 울었다.

  벌써 일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 일이다. 우리학교에 발 디딜 수 있게 된 결과의 시기.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게 됐다. 과거가 어쨌든, 내가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지금-여기에 있다. 어서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날이 오길 기다리며, 많은 걸 수용하자. 그것은 곧 현실이 된다. 행복.

 

최동호 (상담교육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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