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평-첨밀밀

 소의 해 1997년은 여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많은 이슈가 생길 것이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이슈가 생길 것이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세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일들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요즘 TV나 신문상에서 가장 귀추가 주목되며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화제거리가 있으니 바로 머지않은 홍콩의 반환문제이다.
 홍콩은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의 식민지로 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 8대 무역국으로 성장한 그동안 아시아에서 화려하고 물질적인 도시로 이름이 나있는 도시이다. 이렇게 안정되고 남부러울것 없는 그곳이 한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중국에게로 귀속된다고 하니 그 어느 누구가 반가와 하겠는가.
 경제적인 이해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도시안에는 그들 조상에서부터 현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홍콩인들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의 추억,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아쉬움,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담겨져 있기에 홍콩인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홍콩 반환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홍콩의 영화인들은 그들의 아련한 추억과 사랑은 담은 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는데 바로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이 그 중의 한 작품이다.
 돈을 벌기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각각 낯선 홍콩으로 상경한 여소군(여명)과 이요(장만옥)는 자신들의 꿈이자 이상이 되어버린 자본주의를 체험하고 동경하면서 점점 그들의 젊은 나날을 홍콩이라는 거대한 가지에 접목시킨다.
 비록 자라온 환경과 언어가 달라 밑바닥 생활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대륙촌뜨기라는 이유로 무시도 받고 온갖 힘든일을 다하지만 여소군과 이요는 자신들이 바로 홍콩에 존재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로 즐겁기만 하다. 그리고 이때부터 두 남녀는 10여년에 걸친 운명과도 같은 사랑의 힘에 이끌린다.
 80년대를 홍콩과 함께 한 두 연인의 모습은 순수하고 정감어린 영상 그리고 씬과 다음씬 사이의 불연속적 시간을 암시하는 2,3초 가량의 여백을 두는 편집으로 인해 한결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서정적인 음향과 함께 우러나오는 여백의 효과는 이 영화의 감성을 분명히 전달하고도 남는다.
 ‘첨밀밀’에는 여소군과 이요의 운명과도 같은 사랑이 ‘첨밀밀’이라는 단어처럼 달콤하고 감질맛 나는 꿀맛처럼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이러한 여소군과 이요의 사랑 못지않게 감동적이고 눈가가 젖어드는 또다른 유형의 사랑을 바라 볼 수가 있다.바로 이요와 표형과의 연민이 어려있는 사랑이다.
 거의 파산에 처해 절망에 빠져있는 이요를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이요는 여소군과의 이별뒤에 표형을 알게 된다. 여소군에 대한 그녀의 애틋한 사랑은 마음 깊숙이 각인되어 있지만 이요는 표형의 등에 새겨진 자신의 마스코트인 미키마우스 문신을 보고 자신에 대한 표형의 마음을 잃게 된다. 그녀에게 여소군이 소중하고 그립듯이 표형에게 자신이야 말로 절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결국 이요는 범죄 사건에 연루되 홍콩을 떠나야만 하는 표형과 부둣가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여소군을 두고 사랑과 연민사이에서 연민을 선택한다. 이 장면은 교차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멜로물의 필수로만 여겨지던 삼각관계 묘사가 유치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사랑과 연민의 갈등구조를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해주고 있다.
 ‘첨밀밀’이라는 제목은 대만의 유명한 여가수인 등려군의 노래제목이라고 한다. 등려군의 이 영화에 대한 비중은 상당하다. 왜냐하면 여소군과 이요의 유일한 공통점이 바로 등려군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고, 그녀의 존재로 인해 둘은 더욱 더 가까워지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등려군의 사망소식으로 둘은 저 먼 미국땅에서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주인공인 셈이다.
 이 영화를 보기전에 나는 ‘와가위 감독’하면 떠오를만한 그와 콤비를 이루면서 감각적 영상의 대가로 인정받는 두가풍(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이 잠깐 출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인물로 깜짝쇼를 벌일려나 하고 생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지나가는 엑스트라 아니면 두서너마디의 대사정도로만 그가 출연하겠지라고 예상을 했다. 그런데, 진지한 열정으로 영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에게 욕설을 가르치면서 조소어린 눈빛과 웃음을 지닌 술주정뱅이 영어 강사 제레미가 바로 두가풍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나니 그야말로 쇼킹한 기분이었다.
 ‘타락천사’에서 날카롭고 고독한 이미지의 여명이 ‘첨밀밀’에서는 따뜻한 감성과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순박한 청년으로 나온다.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두가풍의 쇼킹한 변신과 함께 이 영화의 볼거리라 말하고 싶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되고 몇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곳 사람들이 ‘첨밀밀’을 본다면 눈시울이 적셔옴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80년대 그들의 살아과 살아가는 모습이 이 영화속에 눅눅히 젖어있기 때문이다.

이 순 옥(고분자공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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