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하는 대학원생

  어제 수영 강습에서 스타트(다이빙)를 했다. 용기 내 몸을 던지면 활강하듯 수면으로 쏙 빠져든다. 수영은 좋은 스포츠이다. 생애에 걸쳐 그렇게 운동을 싫어했던 나조차도 웃으며 오래 즐길 수 있는 종목이다. 배움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물살을 가르고 수면을 영위하며 얻는 촉감과 성취감·유익함은 즐겁다. 시·공간의 한계가 있지만, 때문에 기대와 설렘, 집중이 더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수영도 꼭 즐겁기만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오래 전 타 지역에서 수영을 할 때였다. 대회를 나가는 선수반 청소년이 지도받는 걸 봤다. 발목은 지느러미가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것 같았고, 짧게 고개 내민 시간에 얼마나 많은 호흡이 이뤄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더 놀라운 게 있었다. 코치의 외침이었다. 육두문자를 섞지 않았을 뿐, 사실상 욕지거리를 내뱉는 타박과 고함이 쩌렁쩌렁했다. 고교와 학부를 거치며 만난 다양한 친구를 통해 운동 특기생으로 진로를 잡았을 때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지 익히 들었지만, 직접 체감하니 군대가 우스울 지경이었다.

  그런 내용의 영화가 있다. 정지우 감독의 2016년 개봉 영화 「4등」이다. 주인공 준호는 초등학교 수영선수다. 수영을 좋아해 수영선수를 꿈꾸게 됐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메달 바깥인 4등만 한다. 극성 엄마 정애는 속이 타들어간다. 1등, 아니면 메달이라도 땄으면 좋겠는데 준호는 그저 낭창하게 웃을 뿐이다. 정애는 방법을 갈급하다 전직 국가대표출신 코치 광수에게 준호를 맡긴다. 광수는 유망한 실력을 가졌으나 체벌과 일탈로 선수를 그만둔 역사가 있다. 삶에 회의를 가진 광수는 처음엔 준호를 방치하지만, 준호의 재능을 보고 태도가 바뀐다.

  광수가 준호에게 시키는 훈련은 가학적이다. 겪은 것과 아는 것이 그것뿐이었겠지만, 그것이 준호에게 알맞은 것은 아니다. 수영장에서 목도한 장면은 영화의 장면과 오버랩 됐다. 정애와 광수는 준호와 밀착돼 있다. 이어 자기 욕망을 덧댄다. 투사. ‘투사’는 부정적인 감정을 외부에 전가하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다. 어떤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준호에게 강요하고, 결과로 자아를 유지하려 한다. 엄밀히 준호가 원하는건 아니다.

  라캉은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준호는 놀랍게도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는다. 수영이 좋고 또 하고 싶지만, 학대 받고 싶진 않다는 진심. 그 용기 낸 고백으로 준호는 혼자가 된다. 엄마의 무관심과 코치의 지도와 없이. 홀로 자유수영의 짧은 시간만으로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디며 대회를 준비한다.

  기말고사가 다가온다. 여러 이유로 학점을 갈구할 것이다. 결과를 앞세우니 강의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간과될 여지를 본다. 물론 안다. 생존 때문에 필수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즐거움을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치열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고민을 하게 하는 영화. 부디 준호의 결과를 볼 수 있길. 경영이 아닌 수영처럼, 나만의 템포와 호흡으로 항로를 나아가기 위해.

최동호 (상담교육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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