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04년생인 내 동생은 나보고 “초가집에 산 적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하면 꼭 저런 소리를 한다. 그때 설기현이 후반 43분에 골을 넣었는데 말이야, 아파트 전체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고. 11살이었던 나도 어깨에 태극기를 메고 뛰어다니면서 선수들을 응원했지. 아파트 현수막 게시대에 대형 스크린을 걸고 옆 사람의 어깨를 내 어깨에 걸고 단체 관람을 했던 시절인데.

  우루과이와의 월드컵 예선 1차전이 열리던 11월 24일 저녁 시간 나는 헬스장에 있었다. 샤워를 하고 집에 가서 빨래를 개는데 밖에서 함성이 들린다. 여전히 국가대항전 축구경기는 인기가 많은가보다. 몇 년 전까지는 나도 꽤나 축구에 진심이었어서 토요일 밤 10시, 12시에는 프리미어 리그를 보고 잤다. 새벽 3시 45분에 하는 엘 클라시코를 보기 위해 친구들끼리 깨워주기도 했다.

  한때는 야구에 빠져서 한밭 구장을 떠돌고 유니폼까지 구입했던 내가 요즘은 축구와 야구를 모두 끊고 배구에 빠졌다. 작년에도 배구를 보긴 했는데, 올해 충무 체육관에서 인천 삼산체육관까지 오가며 티켓팅에 열을 올린다. 배구 경기가 수차례 매진되는 이유는 단연 국내로 복귀한 세계 대스타 김연경 선수 덕분이다. 

  그는 크게 웃고, 주먹을 날리며 포효하고, 계산된 공격을 하고도 너스레를 떠는데 능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 배구협회에서 회식 메뉴로 김치찌개를 제공하자 선수들을 데리고 사비로 고급 레스토랑에 간 일화는 유명하다. 차별적인 샐러리캡 제도를 지적했고, KBS <다큐인사이트-다큐멘터리 국가대표>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해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라고도 했다. 

  한화이글스파크에 야구를 보러 갔을 때 느낌과 충무체육관에서 배구 경기를 보며 받는 기운은 상당히 다르다. 어느 날 이글스 파크 경기장 전체를 둘러보는데 짧은 바지를 입고 배트를 가져다주는 배트걸을 보았다. 그날은 날씨가 꽤 쌀쌀했다. 그런데 긴 팔 긴 바지를 입은 사람은 선수도, 감독도, 취재진도, 기자도 모두 남자였다. 주루 코치도, 중계석의 해설자도, 심판도.

  축구 기자가 되어볼까 생각했던 한 때 알아보니 축구 분석 기사로 이름을 날리는 스포츠 기자나 캐스터들은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광고홍보학과나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니까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나도 해볼 만하네 생각했다. 다른 점은 그들 모두 남자였다는 것이다.

  배구장에는 (여자부 경기니까 선수는 당연히 여자지만) 남자 심판도 있고 남자 해설자도 있고 남자 캐스터도 있고 남자 감독도 있다. 7개 구단 감독 모두가 남자다. 남자 경기에서 여자는 치어리더, 팬, 배트걸의 역할을 맡는데 남자는 응원단장을 포함해 무엇도 될 수 있다. 치어리딩 하고 싶은 남자도 있고, 캐스터 하고 싶은 여자도 있을 텐데. 그들의 바람과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는 개인적인 노력 부족 아닌 구조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대부분이 초가집 살던 시대는 지나갔는데 경기장 내부의 성 역할 규범이 이루는 구조는 그 시대와 비슷한 게 아닐까.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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