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주변의 반지하 주택, 낮에도 반지하 주택엔 볕이 들지 않는다. 사진/ 김은지 기자
우리 학교 주변의 반지하 주택, 낮에도 반지하 주택엔 볕이 들지 않는다. 사진/ 김은지 기자

  2020년 아카데미 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에서 화제성 1위는 배우도, 감독도 아닌 단연 ‘반지하’였다. 지난 여름 쏟아진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는 대한민국 반지하의 현실이 영화보다 잔혹함을 일깨우는 데 충분했다.

  지난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간밤에 쏟아진 폭우가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을 덮치는 사고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발달장애가 있던 A 씨와 그의 동생 B 씨, 그리고 B 씨의 딸 C 양은 차오르는 물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의 가족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의 신분으로 반지하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해당 참사가 단순 침수 사고가 아닌 ‘주거 취약계층’과도 연관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반지하는 어디에 있나 

  한국도시연구소의 ‘전국 반지하 거주 현황과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는 36만 3,896가구의 반지하가 존재하며, 거주 인구는 68만 8,99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수도권에만 95.8%가 몰려 있으며, 인구는 66만 명에 달한다. 반지하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시의 경우, 25명 중 1명꼴로 반지하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수도권에는 이토록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많을까? 그 이유는 먼저 우리나라의 건축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지하는 무엇인가

  - 이름 없는 반지하 

  사실 건축법 어디에서도 ‘반지하’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 없다. 반지하 주택은 애초에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계된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건축법 2조에서 지하층의 정의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본래 1962년 제정된 건축법에 따르면, 지표면 아래에는 주거 공간을 둘 수 없었다. 그러나, 1968년 청와대가 북한 특공대원으로부터 습격을 당하는 등 6·25 전쟁 휴전 이후에도 전쟁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되자, 정부는 1970년 지하실 의무 설치 관련 건축법을 개정해 방공호나 대피소의 역할을 할 공간을 마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하실은 유사시 이용되는 공간일 뿐, 사람이 사는 공간은 아니었다. 

  - 사람 사는 반지하의 등장 

  하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반지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서울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상경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곧이어 서울에 정착하고자 하는 수요는 폭증했지만 열 발 늦은 정부의 주택 공급으로, 살 곳을 찾아 헤매던 이들은 눈을 낮추다 못해 지하실과 마주하게 됐다.

  당시 지하에 세를 놓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었지만 심각한 주택난으로 이는 공연히 이뤄졌다. 양질의 주택을 공급할 여력이 없던 정부는 1975년 지하층 거처 설치를 금하는 조항을 삭제했다. 동시에 지하 주택 설치 조건이 담긴 조항을 신설하며 사실상 지하에 사람이 살도록 유도했다. 이어 1984년, 또 한 차례 개정된 건축법은 지하층의 높이 제한을 완화해 현재의 반지하 구조를 만들어냈다.

  - 빗물 위로 떠오른 반지하 

  이렇듯 반지하는 마치 사람이 살 수 있을 법한 공간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반지하는 서민층의 터전으로 입지를 굳히는 듯했으나, 이내 본 모습은 드러났다.

  1990년대는 유독 물난리로 가득했다. 해마다 반지하 침수 피해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다시 건축법 개정에 나섰다. 정부는 개정된 법안을 통해 지하층 설치 의무를 해제함으로써 반지하 건물의 신축을 억제했다. 2000년부터는 주택별 주차장 설치 기준이 강화되면서 건축주들 사이에서는 지하층 없이 1층을 주차장으로 조성하는 필로티 건축 붐이 일었다. 이로써 반지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2000년대 이전 공장식으로 찍어낸 반지하는 철거하기엔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또한 전무했기에 결국 반지하에는 현재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게 된 것이다.

  반지하에는 누가 사나 

  그렇다면 지금 반지하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이번 신림동 반지하 참사가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반지하 주거 인구 비율에 있다. 

  2020년 국토부 주거실태조사를 살펴본 결과, 반지하 거주 인구가 갖는 키워드는 ‘고령, 장애인, 독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반지하에 거주하는 60세 이상의 고령층은 17만 6천여 명으로, 그 비율은 반지하 인구의 29%를 차지했다. 이는 전체 고령층의 비율보다 6%p 높은 수치였다. 이어 건강 문제로 일상생활에 제약을 겪는 장애인의 반지하 거주 비율은 전체 10.7%보다 4%p 높은 14.6%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경우 가장 눈에 띄는 결과를 보였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1인 가구의 비율은 55.7%로 전체 비율 31.7%보다 무려 20%p 가까이 높은 수치였으며, 이는 현재 반지하에 사는 사람 2명 중 1명이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반지하에 거주하는 저소득층과 비정규직의 비율은 2019년 기준 각각 74.7%, 52.9%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반지하 거주민 현황은, 이번 신림동 참사와 같은 사고가 다시 한 번 반복되더라도 결코 이상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 우리 사회는 무슨 수로 이를 막을 수 있을까. 

  반지하에 살지 마라?

  영화 ‘기생충’에 대한 찬사는 신림동 반지하 참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따가운 눈총을 얻게 된 서울시는, 사고 직후 2일 만에 ‘반지하 일몰제’ 카드를 내놓았다. ‘반지하 일몰제’는 기존에 허가된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급히 내놓은 대책인 만큼 허점은 빠르게 드러났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발표는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해법”이라며 “주거 안정성 확보라는 정책적 목표를 두고 근본적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지하 ‘제대로’ 해결하려면  

  - ‘순행’하는 정책

  현재 반지하 주택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반지하 주거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기에 당장 눈 앞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정책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바에 이뤄지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여름은 반지하 실태 파악에 있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전수조사가 단연 필요했다. 비록 서울시는 지난 8월 발표한 서울 내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 계획을 표본조사로 축소하며 같은 참사가 반복될 여지를 남겨뒀지만 필요성은 여전하다.

  도심 생활권 내에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확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지난 8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국정 예산안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지원 예산은 올해 20조 7천억 원에서 내년 15조 1천억 원으로 삭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사회는 이렇듯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향후에는 자치구별 공공임대주택 의무 공급을 도시계획으로 설정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과 투자가 필요하다.

  - 지·옥·고 탈출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책간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마련해 반지하 퇴출 과정에서 반지하에 거주하던 주거 취약계층이 옥탑방이나 고시원으로 전전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순환은 그저 주거 사다리의 가장 아래에서 수평 이동하는 것과 다름 없다. 지옥고에 내몰린 주거 취약계층을 구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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