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 입구 모습, 사진/ 연합뉴스 제공
서울시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 입구 모습, 사진/ 연합뉴스 제공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지난 9월 14일, 서울의 한 지하철 역에서 또다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에 대한 사회의 안일한 의식과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법은 또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다. ‘유명무실’한 스토킹 처벌법이 다시 한번 화두에 오른 지금, 스토킹 범죄에 대해 다뤄봤다. 

온라인 스토킹 범죄, 온라인 스토킹 범죄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사진/ SBS 제공
온라인 스토킹 범죄, 온라인 스토킹 범죄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사진/ SBS 제공

  무고한 희생

  20대 평범한 여성 역무원이 본인의 직장에서 숨졌다. 가해자는 다름 아닌 그녀와 함께 일하던 과거 직장 동료였다. 사건은 가해 남성이 여성을 스토킹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발생했다. 그간 피해 여성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해 남성은 피해 여성의 거부 의사에도 350여 차례 이상 지속적으로 만남을 요구하거나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했고, 이에 여성은 두 차례 고소를 진행했다.  

  지난해 10월 피해자가 처음 고소했을 당시, 경찰은 가해 남성을 긴급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의 영장 기각 이후에도 남성의 스토킹은 계속됐다. 올해 1월 집요한 스토킹으로 피해자가 재차 고소를 진행했지만, 경찰은 “1차 고소 때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구속영장 청구 자체를 하지 않았다. 결국 불구속 상태에서 공판이 이어졌고 지난 8월 가해자에게 징역 9년의 중형이 구형됐다. 그러나 1심 선고 공판일이었던 지난달 15일 하루 전날, 피해자는 살해됐다. 

  스토킹 범죄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연인 관계였던 가해자가 헤어진 뒤 스토킹하던 전 애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가락동 살인 사건’, 지난해 3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가해자가 피해자를 스토킹하다 택배 배달 기사로 위장해 세 모녀를 살인한 ‘노원구 살인 사건’ 등 얼핏 들어도 알 만한 범죄가 상당수다. 이처럼 스토킹 범죄는 우리 사회에 꾸준히 남아 있다. 

스토킹 범죄 재신고 비율 및 단순 현장조치 종결 사건 비율 인포/ 김윤아 기자
스토킹 범죄 재신고 비율 및 단순 현장조치 종결 사건 비율 인포/ 김윤아 기자

    스토킹 범죄

    - 스토킹 행위의 정의

  ‘스토킹 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스토킹 처벌법에서는 스토킹 행위를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이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이하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물건등을 두는 행위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놓여 있는 물건등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상대방을 비롯해 그의 동거인, 가족이 대상이 되더라도 스토킹 행위로 인정된다. 실제로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주변인까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 스토킹은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기 전, 스토킹 행위는 ‘경범죄 처벌법’에 의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만 처벌됐다. 그러나 늘어나는 스토킹 사건으로 범죄에 대한 무거운 처벌과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이 커졌고,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되면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처벌이 가능해졌다.

  스토킹 처벌법은 지난해 10월 시행돼 실제 적용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간 스토킹 범죄는 그저 ‘가벼운 범죄’로 다뤄졌으며, 배경에는 스토킹 범죄를 ‘개인의 사적인 문제’, ‘나와는 관련 없는 범죄’로 치부하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스토킹 범죄는 특정 유명인과 일반인 사이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일례로, 밴드 ‘산울림’ 출신 가수 김창완은 무려 12년간 남성 팬의 스토킹에 시달렸다. 그는 “집을 옮기고 전화번호까지 여러 차례 바꿨지만, 스토킹을 막는 데에는 소용이 없었다”며 스토킹으로 겪은 고충을 드러냈다. 지난 2015년에는 배우 조인성의 중국 팬이 조인성의 집에 무단 침입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과거 미디어를 통해 조명됐던 스토킹은 주로 ‘일반인과는 관계가 없는’, 그들의 세상에서 발생하는 범죄였다. 대중의 관심을 받고 활동하는 연예인에게 일어나는 스토킹 범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치부됐을지도 모른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이성에게 관심을 표현하지만 상대가 받아주지 않을 때,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이러한 속담처럼 스토킹은 다른 범죄와 비교해 보더라도 ‘열렬한 구애’라는 낭만적 프레임 속에 다소 미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모 시의원은 지난 16일 서울시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두고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가해자가 폭력적 대응을 했다”는 발언을 해 사회 속 남아있는 스토킹에 대한 안일한 의식을 여실히 보여줬다. 

  - 스토킹에 주목해야 할 이유

  스토킹은 ‘강력 범죄의 예고’라 불리기도 한다. 스토킹 범죄 자체가 더 심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스토킹 범죄가 드러난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2019년 1월부터 최근까지 기록된 판결문 251건 가운데 91건(36.3%)은 스토킹 전후로 강력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중 31건(12.4%)은 스토킹 이후 발생한 살인· 감금·강간 등의 강력 범죄였고, 살인이 8건으로 가장 많았다. 스토킹을 그저 가벼운 범죄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한, 스토킹을 남의 일로만 바라보기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위험 요인이 적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온라인 스토킹의 비율이 증가하기도 했다. 스토킹을 떠올려 보면, 고전적으로 피해자를 따라다니거나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에서 기다리는 등의 행위를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수법의 온라인 스토킹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지난해 3월, 세 모녀를 참혹하게 살해한 ‘노원구 살인 사건’ 역시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온라인 게임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이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50대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스토킹 경험률’에 대한 응답은 ▲2018년 22.2% ▲2019년 26.3% ▲2020년 42.3%로 코로나19가 발생한 기점부터 대폭 상승했다.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의 발달과 즉석 만남 어플리케이션의 증가로 일면식 없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은 이전에 비해 훨씬 수월해졌다. 동시에, 누구든 스토킹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스토킹 범죄의 대응 방안 

  지난해 10월 시행된 스토킹 처벌법은 경범죄로 다뤄졌던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실제로 해당 법이 시행된 이후 스토킹 범죄 신고율은 대폭 증가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관련 신고가 급증했다. 

  대전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접수된 스토킹 피해 신고 건수는 164건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 접수된 신고 건수는 586건으로 422건(257%) 증가했다. 특히, 이 중 정식 사건으로 처리한 건수는 지난해 19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210건으로 1005% 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토킹 범죄 신고율이 상승한 것만으로 해당 법의 실효성을 따지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스토킹 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다.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 취지는 연인 간 괴롭힘 같은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데, 법 조항에서 ‘상대방 의사에 반해 물건을 갖다 놓는 것’ 등도 스토킹 행위에 포함하다 보니 본래 취지와 달리 층간소음, 채권 추심 등도 신고로 접수되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 역시 “스토킹에 해당하는 범위를 본래 취지에 맞게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스토킹 처벌법의 가장 큰 허점이라 지적되는 것은 ‘반의사불벌죄’ 조항이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명시적인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 그 의사에 반해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한 범죄’라는 뜻이다. 해당 조항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어 결국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회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신당역 살인 사건 역시 가해 남성이 앞서 한 차례 고소를 진행한 피해자에게 합의를 목적으로 또 다시 연락을 지속적으로 시도한 바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가 신당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 처벌법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처벌 규정을 추가하겠다는 법률 개편 추진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또한, 살인·강도·성폭력 같은 전자장치 부착 명령 대상 범죄에 스토킹 범죄를 넣는 방안을 결정했다.

  또한, 경찰은 해당 사건 이후 전국 스토킹 관련 사건을 전수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경찰이 가진 사건은 물론 불송치가 결정된 사건들까지 전수조사해서 피의자의 보복 위험이 있는지,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다각도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지역 역시 대전경찰청 여성 청소년 수사계에서 대전 경찰이 담당하는 사건과 더불어 불송치 결정된 사건까지 함께 조사하고 있다. 또한, 불송치 결정된 사건 중 피해자가 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발견될 시 잠정조치·긴급응급조치를 내려 피해자 보호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성 경찰서는 사건 이후 대전 지역 지하철 역사를 점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난 23일 대전경찰청은 대전범죄피해자지원센터, 에스케이쉴더스와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후속지원’ 업무 협약을 체결해, 안전조치(구 신변보호)가 종결된 피해자를 대상으로 1년간 배회감지 경보, CCTV 등 보안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피해자의 주거지 안전 확보를 비롯해 추가 범죄 발생 시 증거 자료를 마련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범행할 용기’ 주는 사회 

  신당역 살인 사건 이후 법적 제도를 정비하고 스토킹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누군가의 희생 끝에 겨우 변화하고 있는 것들이다. 스토킹 처벌법 제정 당시에도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피해자의 합의를 종용하는 2차 가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했지만 해당 조항은 유지됐고, 정부는 또 한 번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서야 제도 정비를 검토했다.  

  ‘우리나라 법은 유독 가해자에게만 친절하다’ 미약한 우리나라의 범죄 처벌에 대한 비판은 늘 존재했다. 신당역 살인 사건의 범인은 살해 동기에 관해 “중형을 받게 된 게 다 피해자 탓이라는 원망에 사무쳐서 범행했다”며 ‘재판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월부터 불구속 상태로 이어지던 공판 과정에서 가해자는 범행을 결심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피해자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가해자와 피해자의 엄격한 분리가 이뤄졌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관련해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피해자가 다치기 전에 보호하자는 게 스토킹 처벌법의 취지인데 피해자가 죽고 나서야 구속하고 신상을 공개한다”며 “이는 법의 완벽한 실패”라 지적했다. 이어 “국가가 이번 살인에 협조한 셈”이라고 덧붙이며 법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스토킹으로 경찰에 접수된 신고는 2만 2,721건이었다. 그러나 한 번의 신고로 신변이 보호되지 않아 경찰에 재신고한 경우가 이중 7,772건, 이는 전체 신고 3건 중 1건꼴이었다. 또한, 재신고된 사건 가운데 81%는 단순 경찰의 현장 조치로 종결됐다. 경찰이 사건을 정식 수사 과정으로 넘기기 전에, 현장에서 피해자의 안전 상태를 확인한 후 마무리한 것이다. 국가가 누군가를 방치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범죄의 정도를 따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는 없다만, 스토킹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 불릴 만큼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이 심각하다. 피해자는 매순간 긴장하고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것조차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범죄를 근절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인 우리도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구성원 전체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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