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우리 민족에 관한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지난 3일은 한반도의 첫 국가인 고조선을, 9일은 우리 글을 기념하는 한글날이었죠. 한반도 위에 쓰인 많은 조상의 얼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 오늘의 인물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에 이름 석자를 올린 시인, 윤동주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보며 자랐습니다. 우리 민족시인으로 작품 전반에 독립을 향한 소망을 내비쳤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시인의 삶 전체가 독립으로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독립’이라는 키워드에서 멀어져 윤동주 시인을 보려 합니다. 

  유복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윤동주의 외삼촌은 그가 거주한 명동촌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장로이자 소학교 교사였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윤동주는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만 해도 출세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윤동주는 편히 갈 수 있는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문과를 희망하는 윤동주와 달리 그의 가족은 그가 의학‧법학을 공부하길 원했습니다. ‘문과 졸업하면 신문기자밖에 더 되냐’는 말과 함께 말이죠. 윤동주의 장래를 둘러싼 가족 간 다툼은 꽤나 격했다고 합니다.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 이 문제로 그릇들이 날아다닐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결국 윤동주는 자신의 의견대로 연희전문학교 문과로 진학하게 됐습니다. 그리곤 현재 우리가 명시라 부르는 작품들을 남겼죠. 이야기가 여실히 보여주듯,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고 그가 원하는 삶을 꾸려나갔습니다.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죠. 

  윤동주의 일화를 곱씹으며 스친 질문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가정환경에서 편하게 사는 것 대신 고달픈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물음이죠. 감히 단언하건대, 절반의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것이며, 나머지 절반의 사람은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서 태어났기에 다른 삶을 꿈꿔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스스로 면죄부를 줬을 것입니다. 

  몇몇 독자분께서는 ‘나는 가진 게 없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혹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존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게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건 많고 적음을 비교할 수도 없으니 부자와 거지로 나눌 수도 없지요. 

  떠오르는 게 있으신가요? 정답은 바로 ‘시간’입니다. 존재라면 누구나 시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가진 시간이 네가 가진 시간보다 많아’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으니 양을 비교할 수도 없죠. 어떤가요, 아직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생각이 그 방향을 조금 틀었다면 다시 오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윤동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생애를 보냈습니다. 가족들의 기대, 주위의 시선, 마땅히 따라야 하는 관념까지. 시인이 삶의 이정표로 삼은 것은 자신의 신념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도 각자의 신조에 따라 살아가보는 건 어떨까요. 

손자영 (생명정보융합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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