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심당, 교통의 중심, 노잼도시. 저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별명이었습니다. 저는 대전이 좋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을 시골에서 자라왔습니다. 그곳은 길을 잃어버려서는 안 될 정도로 시골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대전시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가정해봅시다. 길을 잃은 여러분을 걱정하는 마음에 친구는 전화를 걸겠죠. 그리고 이렇게 물을 겁니다. “근처에 뭐가 보여?” 위치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보통은 근처에 보이는 마트, 지하철역 등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보이는 것이라고는 논과 밭뿐이었습니다. 실제로 길을 잃은 제게 뭐가 보이냐고 친구가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고구마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아주머니가 보인다고 했고 지금까지도 그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온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프라가 집 근처에 포집돼 있습니다. 대전에 와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이런 것도 집 근처에 있다고?”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서브웨이, 맥도날드와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부터 시작해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는 물론. 영화관, 미술관 같은 각종 문화시설까지. 제 기준에서는 정말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놀란, 가장 힘들어했던 지하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시다시피 대전에는 지하철 노선이 깔려있습니다. 그 덕에 교통환경은 한층 더 개선됐죠. 정시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데다가 빠르고 쾌적하기까지. 저 또한 지하철을 애용하는 중입니다. 물론 지하철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저는 카드지갑을 들고 다닙니다. 요즘처럼 카드결제가 대중화된 시대에 굳이 현금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지갑에는 신용카드, 신분증, 체크카드 이렇게 세 가지를 넣고 다니는 게 보통입니다. 한번은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지하철 개찰구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아직 카드를 빼지 않은게 생각이 나더군요. 몸은 일단 달리면서 손으로는 더듬더듬 카드를 찾아 빼었습니다. 카드를 찍음과 동시에 통과하려는데 이게 웬걸, 개찰구가 저를 막아서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간은 가는데 약속시간은 다가오지, 촉박한 마음에 카드를 계속해서 가져다 대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더군요. 뭐가 문제일까 싶어 카드를 살펴봤는데 신분증이었습니다. 

  지하철 타면서 민증이라니, 술집에서 신분증 검사라도 하는 줄 알았던 걸까요? 개찰구에게 짜증을 낸 사실이 미안해져 다른 카드를 찾아봤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가지고 있는 카드라고는 그 세 가지뿐. 아무리 생각해봐도 교통카드는 없었습니다. 약속시간에 늦을 거 같아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는 교통카드를 새로 발급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 체크카드는 교통카드 겸용이었고, 저는 그것도 모르고 교통카드를 추가로 발급받느라 약속시간에 늦어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친구에게 제 아이큐가 두 자릿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한 기억이 납니다.

  지하철을 탈 때 교통카드만큼 중요한 것이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전역에 가야하는데 반석행 지하철을 타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저는 왜 그랬을까요. 처음 보는 신문물에 압도된 나머지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잃어버린 걸까요? 뿜어져나오는 애국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현충원에 가고 싶었던 걸까요? 뭐 이유야 됐습니다. 중요한 건 방향을 갈아타느라 지하철 요금으로 5,000원 넘게 썼다는 점이 아닐까요. 이건 뭐랄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멍청비용’이 아닐까 싶네요. 

홍민기 (사회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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