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난 9월,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하는 ‘떠오르는 인물 100인’에 선정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22년 대통령 선거의 더불어민주당 캠프에서 2030 여성 표를 결집한 핵심 인물로 부상해 26세의 나이에 최연소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다.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교 출신의 청년 여성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n번방’ 성착취 사건을 최초로 밝혀낸 ‘추적단 불꽃’의 일원이었다는 강력한 이력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은 자본을 벌어들이기 위해 미성년자에 대한 성착취를 마다하지 않는 뒤틀린 자본주의를 폭로했다. 뿐만 아니라 성착취 동영상을 수십만 명이 즐겨 봤다는 점이 밝혀지며 우리 사회의 관음적 성 문화를 드러낸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추적단 불꽃’은 텔레그램과 가상화폐를 통해 은밀하게 진행된 성착취 현장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조주빈, 문형욱 등 범죄자를 잡아들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 폐지와 무고죄 강화 등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에 관한 젠더 갈등이 심화되던 와중에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등장은 혐오 정치를 규탄하고 여성 청년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젠더 관점을 가진 여성을 위한 정치인이 등장하고 여성 청년 유권자 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성 청년 유권자의 정치 참여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도가 상승했다. 출구조사 결과 20대 여성과 20대 남성이 전혀 다른 후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성별에 따라 정치성향이 달라지는 현상이 명확히 드러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론에는 지역 여성 청년은 여전히 유권자의 자리에서 비추어질 뿐 피선거권을 가진 인물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중앙 정치에서 수도권 외 지역 출신의 여성 청년이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다. 박지현 전 위원장은 대통령 선거 막판에 표를 결집시킴으로써 돌파구 없던 거대 정당에서 두각을 나타냈음에도 ‘강원도로 돌아가라’, ‘한림대 주제에’, ‘취업 준비나 해라’, ‘편의점 알바부터 시작해라’뿐 아니라 외모와 목소리에 관한 악성 댓글을 받기도 했다. 악성 댓글에는 지역, 지방대, 청년,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산재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동사무소 업무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댓글에는 나이가 어린 경우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야만 한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룰이 깃들어 있다. 청년이 비대위원장을 지낸 것은 운이 좋아서였을 뿐 박지현이 비난하는 586세대가 훨씬 연륜있는 ‘어른들’로 상정된다. 여성이기 때문에 넥타이 매지 않고 더 말라야 한다. 강원도 출신의, 심지어 지방대 출신이라면 더더욱 인정할 수 없는 정치인이다. 이런 편견과 고정관념이 만연하기 때문에 정무 감각이나 실질적 득표율에 득이 되는 정치인도 내쳐지는 게 지금의 정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지역 출신 여성 청년은 정치할 수 있나. 선거권이 아닌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을까.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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