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년 전 제가 스무 살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모두가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맞으며 연애사업을 진행함에 여념이 없었지만, 지난 20년을 모태솔로로 살아온 저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였습니다. 늘 하던대로 닭다리와의 열정적인 쌈바댄스를 위해 저는 미니스탑에서 넓적다리 한 개를 테이크아웃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도가 뭔지 아시나요? 제가 아는 것이라곤 도는 시보다 높고 레보다 낮으며 영어로 하면 아일랜드라는 점 뿐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입은 한 남자분께서 제 앞에서 도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와의 대화에서 제가 깨달은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관심 없음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점. 두 번째는 저의 사랑스러운 넓적다리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넓적다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스스로 포기하게끔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외국인인 척을 한다면? 설마 외국어로 포교활동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어느 나라 사람인 척을 해야할까? 미국? 일본? 프랑스? 1분에 지구 7바퀴 반을 도는 세계여행을 마친 후 결론을 내렸습니다. 

  답은 중국인이었습니다. 저는 배역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중국인이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다 눈 앞에 천안문이 아른거리기 시작할 무렵 마침 그분께서 말을 걸었습니다. “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니취빨러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아는 중국어라고는 식사 여부를 확인하는 일상대화 뿐이었기에 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거든요. 깜빡이 없이 들어온 니취팔러마에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습니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 어찌할 줄 몰라 멀뚱멀뚱 서있는 저를 노려봤습니다. 그리곤 제가 현지인임을 납득했는지 미소를 띄며 말했습니다.(참고로 저는 토종 한국인입니다) “어... 혹시 중국인이신가요?” 이 대답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여기서 잘만 넘어가면 저는 넓적다리와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겠죠. 

  기쁨에 못 이겨 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이윽고 깨달았습니다. 혹시 중국인이시냐는 말을 알아들을 정도면 그건 이미 중국인이라고 하긴 글렀다는 점을 말입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잠시. 현실은 항상 상상을 뛰어넘는 법입니다.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어... 그럼 한국말을 아예 못 하시나요?” 저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습니다. 이미 그가 저를 의심하는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죠. 

  글로만 읽어서 감이 잘 안 올 독자분들을 위해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어로 하는 포교활동을 피하기 위해 한국말을 알아듣는 중국인이라는 전대미문의 콘셉트를 메소드로 연기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콘셉트 자체도 모순 투성이지만 더 말도 안 되는 점은 이게 통했다는 점입니다. “중국분이시구나. 참 아쉽네요~우리 다음에 만나요~”라고 하며 그는 저를 보내줬습니다. 

  기숙사로 돌아가며 생각했습니다. 이건 뭐랄까... 알면서도 보내준 게 아닐까? 제가 진짜 중국인인 줄 알았던 건지 아니면 저의 사기가 통했던 건지 지금까지도 그 진위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제 계략이 그에게 먹혀들었다는 카타르시스와 토종 한국인임에도 니취팔러마 한마디에 정체성이 역전당했다는 찜찜함을 안고 터덜터덜 길을 걸었을 뿐입니다.

홍민기 (사회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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