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정상인’보다 육체적으로 활동하기 불편하거나 힘든 이들에게 ‘장애인’이란 칭호를 붙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장애인’보다는 ‘잠재적 장애인’이 더욱 많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적 장애인’은 우리 사회를 더욱 혼탁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사회제도자체를 無로 만든다.
 ‘장애인’들은 활동하기가 불편하고 힘들 뿐이지, 생각은 ‘정상인’보다 더 건전하고, 성실하고, 양심적이며 진실되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말로는 서로가 공존할 수 있도록 그런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는 말만 부르짖고 있을 뿐이다. 정작 ‘장애인’들만의 성역인양 빗장을 걸고 열지 않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장애인’보다 더욱 많은 우리 사회의 ‘잠재적 장애인’은 사회에서는 서로가 공존할 수 있고,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그들만의 성역을 만들어 침범하지 못하도록 나름대로의 선을 긋는다. ‘잠재적 장애인’들은 육체적으로 활동하기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다. 손과 다리는 자유자재로 움직여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눈으로는 세상의 혼탁함을 보고, 귀로는 사회의 괴성을 듣고, 코로는 부패한 사회의 냄새를 맡고, 그리고 입으로는 그들의 손과 다리에 의해 느끼고, 눈, 귀, 코로 본 세상은 거침없이 떠들어 댄다.
 ‘잠재적 장애인’은 사회의 양면-부정 · 부패 · 비리가 본재하지만 아직도 온정이 존재하는 사회- 을 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알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옳은 바를 알고, 그렇게 실천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은 사회의 변혁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방관자처럼 그냥 쳐다보고만 있는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보아야 한다. 이땅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위하여 그리고 서로가 하나의 주체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리고 진실이 존재하는 사회를 만들기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분의 열사가 뒤를 이었는지.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아직도 ‘자주’와 ‘민주’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앞에는 우리의 해결과제로서 부정 · 부패 · 비리의 현정권이 펼쳐져 있다.
 자 다시하번 심호흡을 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자. 내가 바로 ‘잠재적 장애인’이 아닌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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