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농활을 다녀와서

 교정마다 붙어있던 친근한 구호들, 막걸리와 경운기라는, 내 삶과는 동떨어진 분위기가 날 설레이게 했다. 학년 모꼬지와 겹쳐서인지 동기들의 참여도 적었고 선배들의 참여마저 적었지만 내가 모꼬지 장소에서 바로 농활지로 떠나는 강행군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설레임과 호기심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도착한 첫날,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러 다녔다. 충대에서 농활온 학생들이니 일거리가 있으면 무엇이든 맡겨만 달라고 부탁을 드리러 가가호호 방문을 했다. 그러나,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집이 꽤 많았다. 또 우리조 구역만 해도 폐가가 두 집이나 되었다. 말로만 듣던 이농 현상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고 또한 그들을 농촌에서 내모는 이 현실에 대해 매우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둘째 날은 우리가 묵고 있던 제상형님댁 밭일을 하게 됐다. 집 뒷편의 동산에 있는 밭에 참깨를 심는 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비자가 아닌 주체적 생산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참 묘했다. 이날의 일이 농촌활동 3박4일 동안 가장 보람있고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힘이들고 일이 고되지만 지금 심고 있는 이 참깨들이 여름에 다시 올때는 내 키만큼 자라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뿌듯했다. 밤에는 동네 형님들과 술자리가 있었다. 오십이 다 된듯한 아저씨께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죄송스러웠지만 어쨌든 형님들과의 술자리는 참 편안하고 즐거웠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에 형님 한분이 거나하게 취하셔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못살겠다. 동네에 노인들만 남고 다들 떠났다. 믿고 뽑았더니 농민들만 가지고 노는 것 같다. 고등학교만 졸업했어도 나 자신이 정치했을 것이다.”라며 분노하시는 모습을 뵈었다. 흙에서 나서 흙과 함께 사시는분들 입에서 어떻게 그런 악에 찬 말들이 나올까, 형님들 너무 힘드시구나 하는 서글픔이 들었다.
 셋째 날은 들깨밭, 고추밭 김매는 일을 했다. 힘들지는 않았지만 추곡약정수매나 의료보험통합, 추곡수매 차액반환 등 몸보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말씀들을 많이 들었다. 셋째날은 마지막 밤이니 만큼 매일 있던 총화가 아닌 우리의 이번 봄농활 전체에 대해 토론을 했다. 전민항쟁을 준비하는 기간이니 만큼 이번 97봄농활의 의의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우리 모두 약속했다. 토론이 끝날 무렵 모범 농활대원 추천이 있었다. 너무나 열심히 하셨던 많은 선배님들이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새내기인 내가 모범 농활대원으로 뽑혔다. 기쁘면서도 어깨가 무서워짐을 느꼈고 농활을 1년사업이라고 하는 만큼 끝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있을 많은 농활을 비롯한 다른 활동들을 열심히 하라는 뜻인 것 같다. 열심히 하신 모든 분들이 다 모범농활대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후배들 챙기랴, 일하랴 바쁘게 뛰시던 선배님들은 모범 그 자체였다.
 짧게만 느껴진 이번 3박4일 농활은 내게 무척이나 많은 것을 주었다. 말로만 듣던 살(殺)농정책의 실체를 직접 보았고 그것이 농민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에서 자라나 쟁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내게는 산 교육의 기회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큰 창이었던 것 같다. 많이 배울 수 있게 도와주신 농민 형님, 형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안 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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