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과 소통에 관한 단상

  영화 ‘4인용 식탁’에서 주부들은 창 밖으로 몸을 던지고 ‘여우계단’에서 여고생은 목을 매단다. 비단 영화에서 뿐만이 아니다. 연령에 제한 없이 하루 3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2002년 기준) 우리 사회에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현대인의 고독감, 그리고 의사소통의 단절. 이 글에서는 자살과 소통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 삶이 힘들다.
  성적? 생활고? 이성문제?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까지 모든 일이 안 풀릴 수 있는지’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서 오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들은 살아간다는 게, 살아 있다는 것에 힘이 든다.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은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자신의 생각을, 원망스러운 처지를. 그것이 하소연이든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욕지거리든 그들 곁에는 ‘대화’를 할 ‘누군가’가 없다. 대화는 모든 사람들을 잘 통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가족과는 깊이 있는 대화가 끊긴지 오래고 이른바 친구들과도 피상적인 관계에 그칠 뿐이다. 이에 대해 사회학과 전광희 교수는 “단순히 고립적인 문제를 떠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그 속에서 이혼가정의 증가나 부모자식간의 불협의 원인에도 경제적인 문제가 빠지지 않을 만큼 경제적인 면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가족이나 친지간에 그 전 같은 정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라는 말로 현대사회 인간관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군중 속의 고독감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주위에 사람은 많아도 ‘대화’를 할만한 사람은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인터넷으로 눈을 돌린다. 인터넷은 이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할 때에도, 그렇게 그들은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인터넷의 문을 두드린다.
말하고 싶은 그들, 자살 사이트와 만나다.
  처지나 상황이 비슷해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고단한 삶에 위안이 된다. ‘나 혼자만 힘든 건 아니구나’ 아이러니컬하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희망은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집단은 소수일 때보다 과격하며 충동적일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한 마음은 행위의 부당함으로 인한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한 술 더 떠서 상황을 악화시켜 자살 결심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또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한마음 정신병원의 이재원 원장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음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혼자 가기 불안하기 때문에 자살사이트에서 동반자를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자살을 시도했건 시도하지 않았건, 혹은 성공했건 실패했건 그들이 자살 사이트에 접속한 1차적인 이유는 ‘대화’였다. 자, 문제를 제기해 본다. 왜 그렇게 대화가 간절한가? 김종호 신경정신과 의원의 김종호 원장은 “대개 자살의도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어떻게든 타인에게 알리고자 한다. 대화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파괴적인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마음을 편안해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화를 하는 동안 자신의 존재이유와 개인의 정체성을 되찾게되고 자신과 세계를 보는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자살 이외에 다른 대책을 찾게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 중 80%가 주위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요청한다고 한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자살생각을 누군가가 막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대화’는 자살을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하게 삶을 열망하는 예비 자살자들이 보내는 ‘구조요청’인 것이다. 자살 사이트를 통한 자살자들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어떤 관심과 배려를 했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자살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자는 이 글에서 자살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기 때문에 금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살이 자살 당사자보다 남아있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더 큰 충격과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삶이 죽음보다 나으며 자살이 자살한 이들에게 유일한 선택이었을지언정 최선의 대안은 아니었다는 것을….

  죽지 말아라.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당신이 죽지 않는다면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 -최유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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