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감과 자아정체성 부재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
2003년 9월 3일 외로운 처지 비관 노부부 동반 자살.
       9월 5일 처지 비관 명문대 졸업생 자살.
       9월 8일 카드 빚 등 고민 일가족 동반 자살.

  연일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서는 자살 소식으로 가득하다, 어느새 뉴스의 사건·사고에서도 교통사고 보다 자살소식을 더 많이 접하게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부터 지난 2~3년 동안 집계된 자살 통계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2000년 자살자수는 1만 1천7백94명, 2001년 1만 2천2백77명으로 꾸준한 증가와 함께 지난달 5일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총 자살건수는 1만 3천55건으로 2001년 자살한 사람의 숫자는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50%이상 많았다고 전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기준에 따라 사고발생 후 72시간 이내에 죽은 경우만 포함] 서울소방방재 본부 구조팀의 올 상반기 자살관련 출동 건수만 해도 1백9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백51건에 비해 30%가량 증가했다.
  ‘교통사고 사망률 1위 국가’ 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살사이트와 세계자살 증가율 1위’라는 불명예를 다시 안게 되었다. 자살률은 흔히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수로 비교된다. 대개 10만 명당 자살자수가 10명을 넘으면 자살률이 높은 축에 드는데, 96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한국의 10만 명당 자살자는 10명이 훨씬 넘는 19.2명으로 조사되었다.(2002년 하루평균 36명, 매시간 1.5명) 전통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보여 온 헝가리, 핀란드, 덴마크 등에 비하면 낮지만, 동양권에서는 가장 높고 세계적으로도 10위권을 오르내리는 또 다시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자살의 사회적 원인 -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
  “자살은 일종의 삶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해요”  김성배(심리·3)
  최근 자살의 급증 중 하나로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실업, 신용불량자의 전락, 사업 실패 등 경제적 이유에서 오는 이러한 자살 등은 흔히 상대적 빈곤으로부터 오는 자살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배곯는 궁핍의 시대라면 모르지만, 없는 게 없는 물질의 풍요를 누르고 있는 오늘날, 이웃에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참을 수도, 납득하기도 어려운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상대적 빈곤감에 의한 자살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경제상태가 최악에 이르렀던 98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당시 1만 2천4백58건에 이르렀던 자살 건수는 경기가 회복된 99년 1만 1천7백13건으로 줄었다가 98년 이후 더욱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지금 시기에 자살률은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학교 심리학과 안근석 교수는 최근 일련의 자살 사건이 “경제적 빈곤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으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느낌으로써 탈출하기 위한 일반적인 도피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동반자살의 경우도 ‘내가 죽게 되면 남은 우리 가족들은 어떡하지?’ 염려에서부터 결국 가족주의나 집단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족과 집단을 나와 동일시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상대적인 빈곤감은 정신적인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의 상실에서 오게 된다”며 “지금 현재 자신에 대한 신뢰와 충만감이 회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살의 정신적 원인 - “내가 왜 살아야 하지?”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주변 사람들을 아껴주며 평범하게 사는 게 제 삶의 목표이죠.”
  우리학교를 다니는 추승옥(자치행정·4)양은 왜 사냐고 던진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바쁜 일상 속에 어느 날 문득 던져진 “나는 왜 살아가나”라는 질문에 우리는 끊임없는 사색에 잠긴다. 핀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흔히 말하는 복지정책이 잘된 잘 먹고 잘 사는 국가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선진국의 자살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은 물질적 풍요로움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에 대해 안근석 교수는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으나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타인을 의식하고 의존하며 주변 환경에 끌려 다니며 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경쟁하는 오늘날 현실에서 타율적으로 의존하다 보니까 물질적으로 살기에는 좋아졌으나 그 안에서 보람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덧붙인다.
  뚜렷한 삶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진다’ 라고 표현한다. 우리 현대인은 오늘날 삶에 대한 보람이나 혹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아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헤밍웨이는 ‘삶에 대한 염증’으로 자살했다.
  안근석 교수는 “자기 자신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존재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의 능력 내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고 여긴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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