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거민 고 박순덕씨 사건

 우리가 서울 경희의료원 영안실을 찾아간 날은 박순덕씨가 사망한 지 꼭 한달째 되는 8월 27일 이었다.
 영안실 주위의 대자보와 선전문구들과는 달리 영안실 안의 영정 앞에는 두서너명의 어린아이들이 무슨일이 일어난 지도 모르는 듯 그저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영안실 한켠에 마련된 ‘철거민 고 박순덕열사 방화 살인 책임자 처벌과 민중주거권 쟁취 비상 대책위원회(이하 박순덕비대위)’였다. 5명이 들어서면 꽉 찰듯한 좁은 곳에서 두 세명의 실무자들이 계속되는 상황을 선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7월 25일 박순덕씨는 전농3동의 재개발지구에서 ‘대책없는 강제철거 반대와 가수용입주’를 요구하는 철거민 10여명과 10M 철탑망루 위에서 농성 중이었다.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적준토건’의 철거용역원이 동원되었고, 이 용역의 사람들은 철탑망루 주위에 폐타이어와 옷가지 등을 모와놓고 불을 질렀다. 이윽고 불길은 독한 연기와 함께 철탑망루 위로 치솟았고, 그 화염을 피하기 위해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은 아래로 투신했다. 이렇게 투신한 털거민들을 ‘철거깡패’들은 다시 폭행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 9명은 중상을 입고 성바오로 · 새서울 · 경희의료원 · 위생병원 등으로 분산 호송되었고, 박순덕씨는 뇌사 상태였다가, 다음날인 26일 새벽 끝내 사망하고야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94년 동대문구 전농3동에 동대문구청과 선경건설, 재개발조합으로부터 강제철거가 이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살길이 막막해진 세입자들은 95년 5월 덕수동 합동 법률사무소에서 선경건설, 재개발조합, 적준토건, 철대위의 4자합의로 같은 해 9월까지 입주할 가수용 52세대를 지어주기로 합의 공증하였다. 이는 ‘도시재개발법’에 명시된 가수용시설을 얻어냄으로써 임대주택 입주가 보장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경건설과 재개발조합은 법적으로 공증까지한 가수용 입주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동대문구청 또한 97년 6월 세입자 중 8세대에게만 강제철거 계고장을 발부하였다. 이같은 불법부당한 강제철거에 맞서 8세대 주민들은 97년 6월 23일 18M 고공 철탕망루에 올라가서 농성을 시작했고, 다음날인 24일 공권력에 의해 지역이 원천봉쇄당하면서 주민 8명이 연행 구속되었다. 이후 남아있던 철거민들은 단전단수 조치로 빗물을 받아 먹어가며 농성을 진행하여다. 그리고 7월 26일 살인적인 철거속에 박순덕씨는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난 지금도 책임자처벌과 가수용입주를 위해 박순덕씨는 장례도 치루지 못한채 싸늘한 시신의 몸으로 영안실에 안치 되어 있다.
 전국철거민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 서울연합, 전국노점상연합회, 한국노동청년연대 등 민주단체가 ‘박순덕 비대위’에 결합하여 같이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철거민 10명이 8월 10일부터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다. 또한 매일 영안실 집회를 진행시키고 있다.
 박순덕씨 사망에 관련되어 있는 선경건설은 지난 95년 전농3동의 강제철거를 시행하면서 가옥과 차량 4대를 방화해 그 책임으로 1억원을 배상한 적이 있다.
 박순덕 비대위 실무자로 바견되어온 국경윤(한국노동총년연대)씨는 “철거민의 처절한 싸움을 여기서 처음 체험하게 되었다. 너무도 힘든 투쟁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권력과 돈에 의해 무참히 침해당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라고 현 상황을 느낌을 전하고 있다.
 현재 상황은 무척 열악하다. 선경건설, 동대문구청, 적준토건 등 박순덕씨의 사망원인에 대해 책임회피만을 하고 있고, 또한 전농3동의 철거 현장에는 ‘애국시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어용철대위의 대자보에는 박순덕씨의 죽음을 매도하고 있다.

 김기선 기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