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년대 대학이 ‘논리’와 ‘이데올로기’로 표현됐다면 90년대 대학은 ‘비트’와 ‘다양성’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이러한 90년대의 대학풍경을 7,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3,40대들은 이해못하기도 하고, 90년대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는 20대들도 그 떄의 모습을 이해못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7,80년대 대학이나 90년대 대학중 어느 모습이 올바르다고 규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학의 본래의 기능 · 성질을 찾아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 기능이라고 한다면 토론과 논쟁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서로 사상과 학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기자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대학이 걸머지어야 할 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문화는 21세기를 내다보는 지금 대학 어느구석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항상 학우들의 토론과 톤쟁의 출발점이 되던 대자보는 지금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기껏 보이는 것이라고는 총학생회 등의 학생자치단체들이 써 붙인 것들 아니면 동아리 회원모집 자보들만이 그것도 새학기에 들어서면 반짝 보이는 것들 뿐이다. 그러고는 나머지가 학원광고지들이다. 물론 대자보들만이 그거솓 새학기에 들어서면 반짝 보이는 것들 뿐이다. 그러고는 나머지가 학원광고지들이다. 물론 대자보를 읽고 쓰는 것을 언론행위로 볼 수 있는데, 지금같이 통신이 발달된 시대에 궃이 일일이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이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면은 어떠한가? 같은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결성해 끊임없는 토론과 논쟁을 벌이고 의문점을 찾아가는 학회(소모임)는 지금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침체되고 있다. 관심있는 분야가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동아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예전에 비해 수 없이 생겨났지만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러한 현상들을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개인주의로 파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살피면 오히려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 2의 입시전쟁이라고 불리는 취업전선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은 대학 1학년생도 토익(TOEIC)을 전공필수로 여기게 하였다. 그래서 더욱 토론과 논쟁이 불필요하게 된지도 모르겠다. 모두(취업이라는) 같은 사상에 (토익이라는) 같은 학문이니까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우스개소리로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지금 대학의 초상이다. 사상논쟁이라는 치열했던 7,8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비교할 수는 없다. 변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학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으며, 우리는 상실해만 가는 대학의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김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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