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통일 미술제를 다녀와서

 묘역 들머리의 굴다리 조형물 ‘광주의 눈’이 먼저 눈에 띈다. 조형물은 역사적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잇는 상징이다.
 ‘광주의 눈 - 화엄광주’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미술 전시회는 국제 주류미술의 흐름을 반영하는 비엔날레와 달리 광주의 지역문화적 특성을 강조한다.
 ‘광주의 눈’을 지나 광주정신 대장군, 통일문화 여장군 등 6개의 장승앞에 선다. 반민주, 반통일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의미이다. 한 평에서는 ‘광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부패공화국이고, ‘문민 = 무능 = 폭력’이란다.
 역사의 현장인 망월동 10리길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장 너머 신묘역에 안장된 무덤들이 보인다. 하직 다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동서남북 4방에 각각 호랑이 사진, 그림, 인형, 거울을 배치한 조형물을 보았다. 3개는 호랑이인데 나머지 4번째의 거울은 도대체 뭔가.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전율과 동시에 깨닫는다. 내가, 인간이 곧 이 야수와 똑같은 존재이구나, 점점 흥미 있어진다. 이쪽에는 철근으로 이루어진 세 사람의 형상이 있다. 군인이 권총을 들고 앞장서고 뒤에는 넥타이를 멘 정치인이, 그 뒤에는 돈뭉치를 든 사장님이 걸어간다. 모두들 권위주의를 상징하듯 목이 지나치게 뒤로 꺽여있다.
 ‘오월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80년 광주 민중항쟁의 상황을 묘사한 60조각의 그림이 있고, 뿌연 공장들 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굴뚝이 십장생을 꿰뚫은 그림 ‘십장생’도 있다. 조국을 그리는 청년 그림터 ‘늦바람’이라는 서울의 그림 모임이 ‘97 그 하나됨을 울림, 통일바람’이라는 조형물을 전시해 놓았는데 여타 전시물과는 다르다. 광주영령에 대한 참배의 마음, 조국통일 염원, 개인적 비원 등 어떠한 것이든 관람객의 염원을 개인 소지품에 담아 달 수 있는 것이다. 전화카드, 병따개, 혹은 자신의 사진 등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염원을 빈 것 같다. 하나의 목걸이도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십자가 위에 예수님이 고통스런 모습으로 못박혀 있다. 누군가 자신의 염원을 담았을 그 목걸이를 보며,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과 민주를 외치다 산화해간 광주 시민들의 영혼은 같다는 생각이다.
 여성미술 연구회에서는 ‘여성의 몸 읽기’라는 기획물을 전시하고 있다. 천 조각으로 만든 이 작품은 여성의 몸 각 부분에 상징성을 부여하여 총체적 인간으로서 여성이 의미를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다. 눈은 새롭게 보기, 가슴은 사랑, 자궁은 창조, 성기는 쾌락, 발은 바로서기, 손은 노동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통일 미술 창작단 ‘솔빛’의 ‘통일의 길’ 작품은 분단 반세기, 그 푸르른 역사전이라는 부제로 1.5미터 높이에 1백미터 길이로 이루어져 있다. 해방과 미군정 돌입, 좌 · 우의 대립과 한국전쟁, 4 · 19, 전태일 열사 산화, 6월 항쟁, 범민족 대회 등 한국 현대사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번 광주 통일 미술제에 대해 일부 미술인들은 이 미술제가 ‘반(反) 비엔날레적’ 성격을 표방한 95년 1회 때와 달리 올해부터 비엔날레의 특별기념전으로 흡수됐다는 점을 들어 성과에 회의적인 시각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지역 미술인들과 학생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이번 미술제가 비엔날레의 의미를 좀더 새롭게 바꿀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구묘역에 올라가 그곳까지 자리잡은 코카콜라 자판기를 보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문 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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