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침묵은 방관이다

  영화 <V For Vendetta>의 배경이 되는  2040년, 영국 정부는 제3차 세계대전을 끝낸 후, 전쟁의 재발 방지를 위해 세상에 절대복종을 강요한다. 자유를 외치던 세상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제재와 규제만이 가득한 세상이 도래한다. 아무도 자유를 외치지 않고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공포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복종의 이유가 됨과 동시에 정부의 모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복종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모든 명령을 지시하는 정부의 실질적 지도자와 그 명령을 조달하는 행위자, 그리고 이에 ‘따르는’ 국민이다. 민주주의가 소멸하고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유일하게 ‘어기는’ 국민이 바로 ‘V’다. 정체를 숨긴 가면을 쓴 채 피와 칼로 자유를 되찾는 그의 등장은 사회의 복종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그의 행위는 사적 복수에서 시작된다. 전쟁범죄의 가장 큰 해악인 생체실험 희생자 V가 정부에게 던지는 가장 극단적인 반항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복수가 비윤리적인 행위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모두에게 자유라는 의미로 각인될 수 있는지 묻는다.
  V는 정부를 표상하는 건물을 폭파하고, 과거 자신을 실험했던 모든 인간을 처단하며 방관하고 복종해오던 국민에게 경각심을 심어준다. 정부는 계속해서 V를 또 다른 공포의 상징으로 만들고, 국민들에게 지금보다 더 충실한 복종을 요구한다. V는 모든 국민을 방관자로 대하진 않는다. 그 예외가 자신을 돕는 신문사 직원 ‘이비’다. 비교적 폭력적인 방안으로 자유에 대한 갈망과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V가 국민 모두에게 하나의 신호탄이자 상징으로 인정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착용한 마스크 덕분이다. 나는 마스크가 갖는 역할과 이로 대두되는 익명성과 방관, 그리고 자유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개인을 지우고 모두가 같은 위치, 역할, 모습을 지니는 것은 복종과 다를 게 없다. 복종 또한 정부가 만든 규칙과 통제 아래 움직여야 하는 기계화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스크를 썼을 때 좀 더 자유로워진다. 모순적인 일이다. 모두 다르길 원하면서 개인으로써 함부로 나서지 못해, 자신을 지우고서야 자유를 갈망하며 요구하는 모습은 결국 또 다른 방관이 아닌가.
  개인이 집단의 힘을 이기지 못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은 두 가지다. 집단에 소속되거나 도태돼 개인으로 남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집단에 거는 믿음은 실로 대단하다. 집단의 목소리가 개인이 내는 목소리보다 훨씬 강렬하고 효율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혼자 모든 목소리를 책임질 때보다 집단이 부담을 나누는 것이 쉽다는 말이 된다. 영화에서 개인으로 활동하던 V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후, 많은 국민이 그의 마스크를 빌려 거리로 나선다. 이들이 마스크를 벗는 순간, 건물은 폭파된다. 이들은 무언가를 행하지도, 함부로 자유를 주장하지도 못한다. 죽음 이후에도 개인의 행위로 주장되는 상징적인 행위가 집단에 의해 목격되는 것이다.
  그들의 마스크는 무엇을 위해 쓰여졌는가. 우리는 마스크를 쓴 이유, 그리고 마스크를 씀으로써 얻고자 했던 집단 이익에 언제나 물음을 갖는다. 그것이 자신의 이익이라고 판단됐을 때 비로소 함께 마스크를 쓰며, 이익을 나눠 갖는다. 
  현재 우리는 더 심화된 마스크 사회 즉, 익명성에 기대어 소속되길 원한다. 함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할뿐더러 집단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생존을 위해 방관한다.  V는 2040년, 집단복종의 폐해에 희생되며 수많은 방관자에게 자신의 자유를 향한 의지를 표현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더 교묘해진 또 다른 형태의 방관과 그들 앞에 벌어지는 새로운 사건이 기다릴 뿐이다.

이주희 (독어독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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